불과 2년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서 겪었던 ‘헝그리(hungry) 절도’ 혹은 ‘생계형 범죄’가 최근의 추락하는 경제와 함께 또다시 사회현상으로 나타난 것.
특히 생계형 범죄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장 원초적 문제인 ‘배고픔’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을 드러내는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생계형 범죄 실태▼
14일 서울 강서경찰서에는 평범해 보이는 한 40대 주부가 슈퍼마켓에서 생선 2마리와 샴푸를 훔치다 붙잡혀 왔다. 아들(19)과 함께 1200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강모씨(43).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온 강씨는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9월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하루 끼니를 겨우 때울 수 있는 처지였으나 그런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이 내일(15일) 대학입시 원서를 내러 가는데 제대로 먹이지도 못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생선을 보니 평소 찌개를 좋아하는 아들 생각이 나 순간적으로 훔칠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난과 배고픔이 한 주부를 범죄자로 만든 셈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야간주거 침입 및 절도 혐의로 붙잡힌 김모씨(34). 사업에 실패해 올해 6월부터 ‘실직자’가 된 김씨는 그 후 백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봤으나 취업에 실패했다.
김씨는 25일 우연히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대문이 열려있는 한 주택을 발견, 그 집에 들어가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13만원을 들고 나오다 귀가하던 집주인 부부에게 붙잡혔다.
김씨를 조사한 경찰관은 “현금 외에 아무 것도 손을 안댄 것으로 봐 ‘초짜’임이 틀림없다. 남의 물건 훔칠 사람으로는 안 보였다. ‘도대체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김씨는 ‘돈이 너무 필요했다’며 크게 후회했다”고 말했다.
▼통계 및 진단▼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발생한 절도 범죄는 11월까지 15만7482건으로 지난해 1년간의 8만9394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연말연시에 절도범죄가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절도 건수는 지난해의 2배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지수’는 더 높다. 서울 한 경찰서의 형사계 소속 경찰관은 “요즘 절도사건의 절반 이상이 초범이며 훔치는 물건도 소액의 현금이나 생필품이 대부분”이라며 “훔친 동기도 ‘먹고살기 힘들어서’나 ‘갑자기 우발적으로 욕심이 생겨서’ 등 생계형 범죄임을 나타내는 대답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동배(金東培)교수는 “‘헝그리 범죄’의 증가는 직장을 잃고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실직자나 빈곤층을 ‘실패자’로 보는 왜곡된 시선이 사라져야 하며 실업급여 인상과 실업자 재활교육 확대 등 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더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