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의 재팬무비]한산한 일본 극장가, 문제는 휴대전화?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7시 25분


이제 슬슬 연말입니다. 일본 신문을 훑어보면 한해를 마무리하는 기사 일색입니다. 영화계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지군요.

일본 영화계는 지난 한해 동안 흥행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지난 해와 비교해 관객이 10% 줄었습니다. 외국 영화는 더합니다. 77억 엔을 벌어들인 <식스 센스>를 비롯해 상반기에는 꽤나 많은 작품이 히트했지만 8월 이후로는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해 전체적으로 관객이 전년도에 비해 17%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일본 언론은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네요. 하나는 시드니 올림픽입니다. 올림픽 같은 굵직한 행사가 극장 앞을 한산하게 만드는 현상은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지요. 다른 이유 하나가 재미있군요. 우리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부쩍 늘어나고 있는 휴대전화의 이용료를 내느라 극장 갈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유난히 일본의 베테랑 감독들이 활약한 해이기도 합니다. <신선조> <도라헤이타>의 이치카와 곤, <나의, 아저씨>의 히가시 요이치, <스리>의 구로키 가즈오, <15세/학교4>의 야마다 요지, <싸구려 배우>의 신도 가네토 등이 저마다 나름의 개성을 발휘했습니다.

중견·신인 감독들 가운데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감독들도 있습니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후지야마 나오미 주연의 <얼굴>에 이어 <신·인의 없는 전쟁>도 만들었습니다. 고(故) 오부치 수상이 극장을 찾아 화제가 됐던 <나비의 사랑>의 나카에 유지 감독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디션> <표류가>의 미이케 슈시, <첫사랑> <사자(死者)의 학원제>의 시노하라 데츠오의 활약도 두드러졌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항상 주목해야 할 감독입니다. 최근 '일본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에 서 있는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올해 <카리스마>란 작품을 발표했는데, 수입된다면(쉽지 않겠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한 형사가 누군가로부터 메시지를 전해 듣습니다. 그 누군가란 인질을 죽이고 자살한 흉악범입니다. 그가 보낸 메시지는 "세계의 법칙을 회복하라"는 알쏭달쏭한 말. 이 형사는 그 뒤 카리스마란 나무를 둘러싼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카리스마는 독소를 분비하는 나무로, 그 독소가 숲의 다른 나무들을 말려 죽이고 있습니다. 한 무리의 인간들은 숲이 다 말라죽는 한이 있어도 카리스마만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무리의 인간들은 숲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 카리스마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숲에 있는 이 두 무리의 사람들이 싸움을 벌이고 형사는 그 싸움에 휘말려듭니다.

무슨 말인지 쓰고 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묘한 울림을 느끼게 됩니다. 국내 영화제에서 <큐어>란 작품을 보신 분은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구로사와 기요시의 '묘한' 매력이란 것을. 아무튼 보고 느끼셨으면 하는데 우리 나라 극장에서 제대로 볼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군요. '공식적'으로 말입니다.

그밖에 히로키 고이치 감독의 <부정의 계절>,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카오스>,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의 <살인>, 모치즈키 로쿠로 감독의 <겁장이> 등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모치즈키 로쿠로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들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술도 한잔 한 사이라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어 유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여간해서 소개되질 않는군요. 하기야 이 사람 영화는 '돈 되는' 영화가 아니지요. 한시 바삐 소극장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오다 유지 주연, 와카마츠 세츠로 감독의 <화이트 아웃>은 일본 영화 가운데 가장 크게 히트한 영화이며 후카마치 사치오 감독의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 극장가에는 일본 영화가 꽤나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도자료 받은 일본 영화만 벌써 10편이 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 개봉된 일본 영화들은 나름대로 다들 괜찮았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완성도 면으로나 나무랄 데 없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러브레터> <쉘 위 댄스> <철도원> <사무라이 픽션>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뭐, 다들 괜찮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들도 그럴지는 의문입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 66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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