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엔난민기구 서울연락관 정현정씨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8시 44분


한국정부의 무성의로 스스로 난민(難民)이 되어버린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서울연락소 연락관 정현정(鄭玹汀·37·여)씨. 그는 97년부터 유엔개발계획(UNDP)에 더부살이를 해오다 이 기구가 사무실을 축소이전하는 바람에 18일 짐을 싸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일 기자와 만난 정씨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UNHCR 예산으로 새 사무실을 구하려 했으나 UNHCR가 한국에서 아무런 법적 지위를 얻지 못해 사무실을 구할 수 없었어요.”

그는 “이같은 사태를 예상하고 올해 초부터 외교통상부 등에 계속적으로 협조를 요청했으나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다행히 정씨는 재야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사무실 공간을 내주겠다고 해 20일 오후 이삿짐센터에 맡겨놓았던 짐 가운데 컴퓨터와 난민신청 서류 등 중요한 짐을 일부 옮겨 급한 업무를 보고 있다.

정씨는 유엔아동기금(UNICEF)에서 일하다 97년 UNHCR로 옮겼다. 그 이전까지 한국의 난민관련 업무는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UNHCR 일본 한국 사무소’에서 담당해왔는데 한국에서도 난민신청자가 증가하면서 상주직원으로 선발됐다.

현재 정씨는 한국에 흘러온 난민신청자를 상대로 상담과 안내 난민신청, 소송 등 업무를 대행해준다. 때로는 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 임시거처를 알선해주기도 하고 국내 생활의 적응을 도와주기도 한다. 올해 들어서도 아프리카 콩고인 20여명과 미얀마인 20여명을 포함해 50여명의 난민신청자들을 도와줬다.

그러나 정부가 난민신청을 받아준 적은 한번도 없다. UNHCR가 난민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위임난민(Mandate Refugee)’도 4명 있었는데 이들도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난민신청자 본인이 난민 인정의 요건인 정치적 박해 사실 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

“혹시 난민신청자들이 없어진 사무실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고 있을 것 같아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정씨는 난민들을 돕는 것은 결국 우리정부의 국제위상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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