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인기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은 '여성 드라마'라는 특성을 꼽는다. 그동안 현모양처로만 그려지던 가정 주부의 고정관념을 벗기고, 권위적인 남편에 맞서 여성으로서의 처지를 새롭게 자각해 가는 모습이 공감을 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줌마>를 한 걸음 빗겨 나서 보면 이 드라마가 그냥 여성의 자각을 소리높여 외치는 것 외에 꽤 강도 높은 사회 풍자도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진구와 그의 '정신적 연인' 한지원(심혜진 분)을 중심으로 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극중에서 강석우와 심혜진은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엘리트 그룹인 대학의 '교수님'이다. 삼숙의 오빠로 장진구와 대학원 동기인 일권(김병세 분)도 대학 교수이고, 지원을 좋아하는 박재하(송승환 분)도 대중문화평론가란 직함을 갖고 있다. 진구의 동생인 아영(박주미 분)도 보석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의 소유자이고, 그의 남자친구 수환(김호진 분)도 대학 교수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그들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한마디로 위선적이고 희화적이다. 그동안 교수나 의사, 변호사들의 비리나 문제점을 다룬 드라마는 많았지만 대개 '남보다 잘났기 때문에 저지르는 잘못'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아줌마>의 작가 정성주는 그런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지식인 사회의 허세와 무능력, 타락을 대놓고 그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드라마의 인기를 좌우한다는 삼숙의 남편 장진구. 대학 교수라고 하지만, 그가 극중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사춘기 소년보다 더 단세포적이고 즉흥적이다.
입으로는 갖은 현학적인 말을 다 늘어놓으며 주위 사람들, 특히 아내 원미경의 '무지함'을 비웃지만, 정작 위기에 닥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의 무능함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다. 전임강사 자리를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매직(賣職)'하고, 음주운전도 돈으로 무마하는 등 '속물'들의 처세술을 다 익히고 있으면서 자신과 지원간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탄한다.
평소 우습게 보던 삼숙과 이혼을 결심하고 나서 당차게 나오는 그녀의 태도에 갈팡질팡 하지만 절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우유부단함과 불필요한 자존심만 센 '먹물'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그와 비교해 오히려 세상에 대해 차분하고 실속있게 대처하는 것은 진구가 경멸하는 아내 삼숙이다.
진구의 연인 한지원도 철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자유주의자로서, 자신의 삶은 물론, 남의 삶에 대한 아무런 책임감도 없다. 진구에 대한 절실한 감정보다는 독신주의자로서의 멋으로 남자를 만나는 스타일이다. 한때는 후배 교수인 수환을 열렬히 좋아하다, 대신 진구와 눈이 맞았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남자와의 사랑, 아이 양육 등을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영화에 등장하는 우아한 사랑 이야기로 착각하는 '꿈' 속에 살고 있다.
삼숙의 오빠 일권 역시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만을 생각하는 전형적으로 이기적인 인물이다. 아내 몰래 제자와 바람을 피우면서 남의 논문을 표절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고, 대학에서도 학문 연구 보다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스승과의 연줄과 인맥을 유지하는데 온 신경을 쓴다. 동생 삼숙의 이혼 문제도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을 하는 것일 뿐, 동생의 아픔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가 없다. 그밖에 지원을 짝사랑하는 재하나 진구의 동생 아영 역시 속물적인 '근성'이 강한 것은 비슷한다.
어지간하면 한 두 명이라도 극중에 지식인다운 품격과 '지성'을 지닐 수도 있는데, 작가 정성주는 모두를 철저하게 위선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시각은 진구와 지원이 친구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맹세하는 이른바 '언약식'에서 잘 나타난다. 두 사람이 불꽃을 들고 사랑의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장면은 감동적이기 보다는 마치 유아들의 소꿉장난을 보듯 우스꽝스럽고 치기어린 풍경이다.
80년대 캠퍼스 문화의 산물인 '언약식'을 엄숙한 표정으로 치르는 그들의 모습에는 이 시대를 사는 고민이나 아픔은 없고, 20년 전의 추억과 낭만에 안주하려는 유아적인 정서만 보인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윤리적, 도덕적인 가책이나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툭하면 화려한 수사와 단어로 속세의 무지몽매함을 탓하는,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 정성주는 그들의 모습을 어설픈 3류 코미디로 보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드라마 속 인물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희화적인 인물 묘사가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들이 시청자에게 공감대를 갖고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인물들의 행태가 재미있어서인지, 아니면 '니들도 별 수 있냐'라는 이 사회 지식인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 때문인지….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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