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판에 정부는 22일 금융노조의 요구를 대거 수용해 파업을 면하기는 했지만 금융개혁을 바탕으로 경제회생을 기대하던 국민에게 또한번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2002년 6월까지 합병은행의 독자영업을 보장하며 인원감축도 노사간 자율 결정키로 합의하고도 금융구조조정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퍼부어질 은행에서 낭비적 요소가 상존한다면 그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금융감독위원회가 해명에 나섰지만 노―정(勞―政)간 해석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정부개혁 의지는 의심받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허약해지고 경제가 혼란에 빠진 오늘의 현실은 김대중대통령의 경제운용 방식을 볼 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거 전두환대통령 시절 그는 자신이 스스로 경제에 문외한이라는 전제 아래 고 김재익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 경제팀에 정책선택을 일임하고 자신은 그들의 방패막이 역할만 했다. 따라서 당시 김수석은 민간위주 시장경제, 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위해 소신껏 일했고 그 결과 정부의 정통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오일쇼크를 극복하면서 다시 한번 번영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개발경제시대의 군사정권과 ‘국민의 정부’를 맞비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당시에는 노조가 없다시피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국민의 반정부 감정이 강했던 반면 이 정부 아래서는 환란 직후 국민이 금반지까지 내놓으면서 위기극복 정책에 동참할 정도로 여건이 좋은 면도 있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정책수행 과정에서 경제각료보다 자신의 경제지식을 더 신뢰한 나머지 수시로 전면에 서기를 원하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기라는 여론의 주문은 대북정책에만 치중하지 말고 경제에도 신경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선두에 서서 큰 방향을 제시하고 전문가들인 경제팀에 무게를 실어주기보다 소소한 현안을 직접 언급하는 모습이었다.
그로 인해 경제장관들은 힘을 잃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게 돼 시장은 더 이상 그들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대통령은 경제주체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여건 아래서는 김재익수석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다.
이제 김대통령은 또다른 김재익이 나타날 수 있도록 조직에 힘을 실어주는 일부터 해야 한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