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대부분의 삶의 영역이 상층부 중심, 특히 정치권과 경제계 중심으로 논의되고 계획되며 통제되는 상황에서 특별히 언론과 학계는 이른바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화하고 ‘아래로부터의’ 대안적 시각과 전략을 공론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12월 초순, 농가당 2000만원에 가까운 부채에 시달리며 삶의 전망을 상실한 농민들의 실정을 세 차례에 걸쳐 심층보도한 것은 눈길을 끌었다(8, 9, 11일자). 11일자 A29면에서 한국 내 외국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모두 같은 인간’이란 입장에서 인권 사각지대를 들여다본 것도 좋았다. 특히 편법적인 연수생 제도 때문에 양산되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세계화’ 구호나 ‘선진 일류국가’ 구호와 잘 대비돼 좋았다.
한편 경제위기와 더불어 해체되는 가정문제나 공격성이 강해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어린이들 문제를 부각시킨 것도 뜻깊었다(6일자 A31면, 12일자 A31면, 21일자 A24면). 경제위기의 성격과 사회적 책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본다.
특히 14일자 A25면에서는 아이들의 적성과 잠재능력에 대한 관심 기울이기를 통해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리만족’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을 제시한 점이 돋보였다.
더불어 신용카드의 급증에 따라 과소비나 즉흥소비, 모방소비 등 낭비가 심해지고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는 ‘카드 권하는 사회’를 고발한 것도 사회의 발전 향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지적이었다(12일자 B2면). 특히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만 책임을 돌리려는 풍토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기자의 통찰력을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16일자 A31면 ‘인생도 다모작’에서는 최근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다양한 고용관계가 등장하는 현실을 잘 보여줘 주목을 끌었다. 물론 서술만 있었지 분석이 없어 아쉬움은 남는다.
한편 4일자 A7면에서 ‘이삭뽑기식 성장’ 정책의 허구성을 꼬집은 것과 13일자 오피니언에서 ‘인기영합식(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경계심을 고취한 뒤 21, 22일자에서 본격적으로 선심사기 정책의 폐해와 대안을 논의한 것은 정부의 정책기조 중에 잘못된 핵심 두 가지를 짚은 좋은 기사였다. 22일자 A3면에서 노동정책의 ‘탈정치화’와 노동개혁의 ‘철학 정립’을 부각시킨 것도 시사적이었다.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일류 언론’이 되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중들이 직면한 삶의 문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발전적 해결책 모색에 지혜와 통찰력을 모아내야 할 것이다.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