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개미들 77조 날렸다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29분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주식투자.

당신은 극구 말렸었지.

그래서 당신 몰래 대출받아

시작한 게 화근이었지.

손실은 점점 커지고,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대출.

대출금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고.

어느새 우리가 입주해야할

새 아파트 가격보다도

더 많은 빚만 내 앞에 남았구려….’

얼마 전 한 인터넷 증권사이트에 올라온 ‘당신에게’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자신을 ‘주식으로 쫄딱 망한 개미’라고 소개했다. 수천 명의 다른 개미들이 이 글을 읽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을 표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변에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이 없다고 개미들은 입을 모았다.

올해 주식시장은 이처럼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손해액을 추정해보면 개미들이 얼마나 당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거래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날린 돈은 5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거래소의 시가총액은 지난해말 350조원에서 22일 현재 185조원으로 165조원이나 감소했다. 외국인 보유비중 29%를 비롯해 기관(5%) 대주주(30%) 보유비중을 감안하면 개인이 보유한 주식은 어림잡아 35%선인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허공에 날아간 165조원 가운데 개인은 35%인 57조원을 손해본 것.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도 지난해말 99조원에서 22일 현재 29조원으로 급감했다. 코스닥시장의 소액주주 보유비중은 30%선으로 추정되므로 개인의 손실분은 대략 20조원인 것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양 시장을 합하면 개인이 올해 주식으로 날린 돈은 모두 77조원에 달한다.

77조원이란 금액은 정부가의 내년 우리나라 예산안 규모(101조)의 약 77%에 이르는 액수다. 거래소시장 시가총액 상위 1∼4위 기업인 삼성전자 SK텔레콤 한국통신 한국전력의 시가총액 합계가 83조원이므로 손실액에서 조금만 더 보태면 이들 한국의 최우량 기업 4군데를 사들일 수 있는 규모이기도 하다.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피해액을 한 번 추산해보자. 지난해말 일반인들이 증권사에 튼 활동계좌수는 757만개. 올 들어 18일 현재 활동계좌수는 879만개로 122만개가 늘었다. 그러나 계좌당 총 잔고(현금+유가증권)는 오히려 118조7754억원에서 90조3754억원으로 감소했다. 계좌당 자산 규모가 지난해말 1569만원에서 현재 1028만원으로 줄어든 것. 계좌당 평균 34%의 재산이 1년 만에 증발해버린 셈이다.

기관과 외국인투자자, 대주주도 물론 올해 주식투자에서 평가손을 입었다. 하지만 개인의 손실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코스닥지수가 사상 최고에서 최저치로 무너지면서 코스닥 기업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이 최대의 피해자로 남게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개인들은 거래소와 코스닥뿐만 아니라 제3시장과 장외주식 시장 등에서도 큰 손해를 본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이를 합할 경우 총 피해 규모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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