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처음엔 기세등등했다. 김중권(金重權)민주당 대표에 대해 ‘지도자 자격이 없는 기회주의자’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석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한 것이 당에 내분이 있는 것처럼 비쳐 당과 대통령에게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 23일 꼬리를 내렸다.
첫 발언 때의 상황을 살펴보자. 21일 저녁 8시경 서울 서대문 J수산센터. 노장관이 주최한 출입기자단과의 송년모임 자리에서 자연스레 화제는 현 정치상황으로 흘렀다. 노장관의 정치적 무게 때문이었다. 그는 작심을 하고 나온 듯 거침없이 말했다.
“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이긴 해도 지도자로는 절대 모시지 않겠다”는 말은 첫 포문이었다. 백세주 술잔이 한차례 돌아가기도 전, 그의 발언은 이미 가속도가 붙은 상태였다. 그의 이날 발언이 본보에 처음 소개(22일자 A1·5면)된 후 파장은 컸다.
‘취중발언’이라는 민주당의 집안단속성 발표에 23일 오전까지도 “무슨 소리냐. 취중실언이 아니다. 내 소신과 판단을 얘기했던 것”이라는 그의 당당함은 돋보였다. 실제로 그는 전혀 취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장관직 사퇴(박상규 총장)는 물론 출당조치도 불사한다는 말까지 일각에서 나온 뒤 그는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노장관은 그날 비보도를 요청한 적이 없다. 기사에 소개된 것말고도 그가 한 얘기는 많았다.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가방끈이 긴 사람”으로 김중권 대표 이외에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도 거명됐었다. 장관직을 맡아보니 (공무원 가운데) 직위해제시킬 사람들이 많아 자신도 놀랐다고도 했다.
고위인사들의 발언 번복은 상황에 따라 이해될 수도 있다. 정말 대의(大義)를 위해서라면 개인 소신을 접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장관의 경우는 그 또한 상황파악에 능한 ‘기회적 전략주의자’라는 평가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김동원<경제부>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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