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터치(High Touch)’는 곧 ‘휴먼터치(Human Touch)’다. 인간의 얼굴을 한 디지털로 느끼는 감촉, 인간의 얼굴을 한 경영자가 얻는 감동,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자가 갖는 감흥이 모두 하이 터치다.
인간의 얼굴에는 모진 풍파가 배어 있다. 그 풍파를 저자는 ‘하이테크(High Tech)’라고 부른다. 그는 기술 때문에 도취되고 중독된 지대에서 힘겹게 서식하고 있는 인간을 보면서 절망을 보았다. 아이들이 밀리터리 닌텐도 콤플렉스에 마취돼 컴퓨터 게임하듯 총을 난사하게까지 만든 하이테크의 향연을 좌시할 수 없었다.
기술의 원래 취지는 인간의 상상, 꿈과 갈망을 성취하기 위한 창조적 작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술은 인간을 옭아매고 있다. 인간 정신과 영혼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결국 하이테크는 인간을 새로운 의미를 찾아 떠나게끔 등을 떠밀고 있다. 딱한 인간은 자신의 땅에서 유배되고 말았다.
그 유배지에서 피어나는 희망이 하이터치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저자는 모두가 디지털과 인터넷을 찬양하기 바빴던 1999년 이 책을 출간해 기술 중독증을 엄중 경고했다.
그 후 1년, 인터넷 신경제는 숱한 사람들을 울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하이테크에 중독되어 대면 관계를 깡그리 무시하고 온라인과 사이버 일변도의 세상을 낙원처럼 숭배해왔던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반면 닷컴에 기습당했어도 굳건하게 이겨낸 하이터치 기업들은 더욱 빛나고 있다. 최근 로봇 강아지 ‘아이보’를 선보인 소니는 ‘디지털 드림 키드(Digital Dream Kids)’를 비전으로 내세워 하이테크를 ‘하이터치’했다. 미래의 꿈인 아이들의 꿈을 생각해 첨단 디지털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의지다.
또 전자상거래에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실물과 실제 대면을 소홀히 하지 않아 더욱 주목받고 있는 하이터치 모범 회사인 ‘찰스 슈왑’도 좋은 예다. 사이버 주식거래로 메릴린치를 주눅 들게 만들었던 이 회사는 사이버 거래가 폭증하는 와중에도 묵묵히 오프라인 점포수를 늘려만 갔다.
저자는 하이터치를 좀더 확산시키기 위한 특이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표본 예술(Specimen Art), 즉 MRI나 엑스레이와 같은 촬영 장비를 통해 인간 그 자체를 투영해 보고자 하는 전위 예술의 한 장르가 그 것. 이런 새로운 체험을 통해 나 자신(self)을 보고 무언의 대화를 시도하는 색다른 훈련을 권장하고 있다(이 책의 전용 홈페이지 www.hightechhightouch.com 참고).
이 책의 전반적인 톤은 문명사적 사려가 깊게 배인 차분한 에세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하이터치의 절박함 그 자체다. 흡사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 카탈로그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이터치 없는 하이테크는 종말’이라는 잠언이 담긴 예언집 같다.
심상민(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