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윤배/성교육 강화 낙태비극 막자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37분


전세계에서 1년에 약 5500만∼7000만명의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낙태로 인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낙태가 합법화돼 있는 인구 2억4000만명의 미국에서는 매년 약 160만건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반면에 낙태가 원칙적으로 법에 의해 금지된 한국에서는 연간 약 200만건의 낙태가 이뤄져 세계 제일의 낙태 발생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97년 조사 결과 한국의 기혼여성 중 44%가 임신중절수술을 경험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낙태가 인간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이 시대 최대의 폭력인데도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존귀한 생명의 원칙에 정면 위배되는 낙태 문제가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아직 인간 단계에 이르지 못한’ 태아의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이유로, 또는 불완전한 피임 방법을 핑계로 낙태를 합리화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태아는 수태해서 임신 4개월이 되면 성인과 다름없는 신경조직과 신체구조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현대의학은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낙태되는 태아는 순전히 타인의 의사와 외부의 힘에 의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형법 269조는 분명히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낙태가 공공연히 성행하고 있는 사실은 이 법률 조항이 실제로 사문화됐거나 정부가 낙태를 방기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리고 모자보건법 역시 인공유산 허용 기준을 ‘모태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라고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 낙태나 인공유산을 알게 모르게 부추기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인을 받은 낙태약이 곧 시판될 예정이어서 낙태 문제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됐다.

산모에게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이 낙태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첫째, 청소년이나 미혼 남녀 모두가 피임을 통해 낙태를 예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미혼모의 낙태 건수가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둘째, 의사들이 양심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낙태 시술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료수가 제도로는 낙태 요구를 과감히 거절하면서 산모의 산전관리와 분만에만 재정을 맡길 경우 병원 운영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셋째, 미온적이고 애매모호한 현행 법규로는 낙태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 보다 엄정하고 강력한 법문으로 개정돼야 옳다. 낙태에 관한 법은 고도의 의료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항목이므로 법조인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될 것이며 의사들의 합의를 법문에 반영하려는 정책 당국의 의지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 윤 배(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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