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새천년의 희망에 들뜬 올해 벽두에 찾아와, “나 다시 돌아갈래!”하는 피맺힌 절규를 툭 던져놓고 가버린 당신. 벌써 올해도 끝나갑니다.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당신이 던진 이 질문이 1년동안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았지만, 아직 대답을 마련하지 못한 나는 온갖 송년모임을 기웃거리다 밤늦게 돌아와 흐린 눈으로 ‘박하사탕’을 다시 봅니다. 삶에 대한 환멸만 남은 당신이 돌아가고 싶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요.
그러고보니 올해의 많은 영화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사이더 하우스’는 “한때 희망에 들떴으나 결국 부질없다”고 과거를 술회하고, ‘매그놀리아’는 “과거를 잊어도 과거는 영원하다”고 지워지지 않는 상흔처럼 과거를 바라봅니다. 또 ‘불후의 명작’은 향수에 젖어 순수했던 과거를 추억합니다. 행복한 추억에서조차 아련한 슬픔이 묻어나는 것은 과거의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不可逆性)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이 위악적 포즈로 첫사랑 순임을 떠나보낸 것도, 기찻길에 뛰어든 것도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돌아가고 싶어했던 과거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순임이가 “공장에서 하루 1000개씩 박하사탕을 싸기 때문에 박하사탕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고단한 청춘일 뿐이지요. 당신이 돌아가고 싶었던 시절은 혹시 시간을 공간화한 과거가 아니라, 무언가를 꿈꾸는 시절이 아니었나요?
떨어진 꽃잎이 다시 붙는 회귀는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꿈꾸고 동경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현재화하는 길이 아닐지요. 이창동 감독이 영화에서 시간을 되돌려놓아 20대 꿈많은 시절의 당신이 보는 이의 망막에 남는 마지막 모습인 것도 그런 뜻에서일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사실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기억된 현재’이고 미래는 ‘기다리는 현재’라면, 기억하고 기다리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 이유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때로 일상의 반복이 견디기 어려워도, 영화에서처럼 멀리 보이는 희미한 점 하나가 출구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걸음을 반복하며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별들이 자신의 궤도를 따라 운행을 반복함으로써 하늘의 사건이 완성’되듯 말입니다.
영화 마지막, 20대의 당신에게 순임은 “영호씨의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합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며칠후면 또다른 수많은 영호가 꾸게 될 새해의 첫 꿈이, 부디 좋은 꿈이기를 바랍니다.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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