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4시]지하철 첫차와 막차

  • 입력 2000년 12월 31일 17시 14분


지난해 12월26일 오전 5시14분, 지하철1호선 용산역 플랫폼. 멈춰선 구로발 청량리행 첫차의 ‘첫 손님’들은 무언가 한가지씩 ‘자기 일’이 있었다.

휴대전화에 대고 “요즘 유행하는 둥글고 큰 귀고리를 넉넉히 확보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며 한창 흥정중인 박내성씨(38·동대문시장 액세서리 노점상) 주위로 승객의 절반 이상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것도 이들에겐 큰 일. 좌석이 넉넉한 첫차에선 굳이 자리 양보하기 싫어 자는 척 할 필요가 없다.

◇새벽 5시 14분 용산역

절반 이상은 꿈나라에, 한쪽선 이른 전화 상담

다음날 오전 5시45분 지하철 2·4호선 환승역인 사당역에 도착한 2호선 첫차 풍경도 비슷했다. 영하 7.6도의 쌀쌀한 바깥 기온 탓인지 승객들은 앉자마자 웅크려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다. 컴퓨터학원 새벽강의에 가는 이모양(19·중소기업 사무보조원)은 “예습 안하면 버겁다”며 가방을 책상삼아 인터넷관련 책을 뒤적인다.

첫차 승객들은 이렇게 노선 구분 없이 대개 억척스럽다. 새벽부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냄새가 이런 것일까.

막차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밤 11시가 넘으면 취객 비율이 갑자기 늘고 시끌벅적해지는 건 어느 노선이건 비슷하지만 사람들의 ‘구성’만은 다르다.

취객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수도권 전철을 포함한 1호선 구간.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밤 11시 20분 서울역

"막차 놓칠라" 허겁지겁, 흥청망청 취객에 시끌

오후 11시20분 서울역에서 수원행 막차를 탄 박모씨(34·수원시 권선구)는 “술약속이 자정을 넘기면 택시비가 4만원이나 든다”고 말했다.

2, 3호선은 여기에 학생들이 덧붙는다. 특히 대학가를 거치는 2호선은 막차시간이 각 대학 도서관 문 닫는 시간과 겹쳐 도서관과 주점이 공존하는 야릇한 분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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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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