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바닥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할 정치인 이름을 대지 못했다는 동아일보 여론조사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의원과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원순(朴元淳)변호사, 연세대 허영(許營)교수 등으로부터 정치불신의 원인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방안을 들어봤다.
▽힘의 정치가 나라 망친다〓이들은 정치불신의 원인을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대결논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다 보니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됐다는 것이었다.
허영교수는 “자유당정권이나, 이를 몰아내고 들어선 민주당정권, 그리고 30년 군사정권과 이들에게 대항했던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정권 모두 힘의 정치에 집착하는 것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들이 정치를 하는 한 정치의 변화와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다”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가 등장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대권정치 그만하자〓김근태의원은 “대통령선거가 끝난 날부터 다시 대권정치가 작동되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며 “정치권 전체가 모든 관심을 대권에 두고 움직이다 보니 국민생활과 동떨어진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97년 대선 후에도 98년 한해 정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됐을 뿐, 99년부터는 정권 탈환이나 정권 재창출에 각 당의 관심이 집중됐다는 것이었다.
손학규의원도 “한국정치에서 대권은 알파요 오메가요 그 밖의 모든 것이다. 정치인이 사시사철 대권싸움에만 열중해 있으니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느냐. 그러다 보니 민생과 유리된 정치가 계속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줄서기 정치에서 벗어나자〓박원순변호사는 “개혁성이 있는 정치인도 당론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없는 정당시스템이 문제”라며 1인 보스 정치를 구태(舊態)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한 의원이 당론과 다른 소신을 밝히면 금방 ‘튀는 의원’으로 찍혀, 당직에서 배제되는 등 ‘왕따’를 당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는 정치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근태의원도 “1인 보스 정치에다 배타적 지역주의가 결합해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 자기 목소리를 갖고 정치적 결단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자기 주장을 하면 마치 공천해 준 사람의 뜻을 저버려 신의가 없는 것처럼 매도하는 문화부터 타파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새 시대 새 인식이 필요하다〓손학규의원은 21세기 디지털사회를 ‘국민 각자가 언론기관이나 다름없는 네트워크의 주인이 되는 개방형 정보사회’로 규정하면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원순변호사는 “국민을 개혁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없다면 국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정치개혁에 활력이 붙는다는 얘기였다.
그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해 정치소비자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 개혁성 있는 정치인들을 가려서 격려, 지지해줄 때 정치변화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인수·선대인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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