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양자로 가서라도 공조회복"

  • 입력 2000년 12월 31일 19시 19분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0시경 국회 귀빈식당에서 민주당 배기선(裵基善) 송영진(宋榮珍) 송석찬(宋錫贊)의원의 합동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회견을 마친 뒤 곧바로 국회 자민련 대표실로 가 입당원서에 서명한 뒤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 통화했다.

한나라당은 경악했고, 자민련은 환호했다. 세 의원은 기자회견에 앞서 남궁진(南宮鎭)대통령정무수석과 민주, 자민련 양당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탈당 및 입당 방침을 통보했다.

▽‘D 데이’〓이들이 기자회견 ‘D 데이’를 30일로 잡은 것은 하루 전날인 29일이었다. 세 사람은 전화로 거사일정을 확정했고, 이같은 방침을 전달받은 자민련은 29일 밤부터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이들은 당초 민생법안 처리가 예정된 8,9일 본회의를 마친 뒤 자민련 입당을 결행할 예정이었으나, 세 의원 중 한 사람의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해 거사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들로부터 ‘동반탈당’을 권유받았던 충청권의 P, J의원 등이 탈당에 난색을 표하자 더 이상 ‘포섭대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탈당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인제 대통령 만들려면"▼

▽신변정리〓29일 밤까지 세 의원은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 자신들의 결심을 암시하는 등 신변정리를 마쳤다.

송석찬의원은 이날 대전 충남시도지부 송년회에 참석해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면 뭔가 희생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뒤 이최고위원에게 “내 신상에 변화가 오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며 의미심장한 인사말을 했다.

송영진의원 역시 28일 정균환(鄭均桓)총무에게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마음으로 결심을 했다”고 통보했고, 이에 정총무는 “충정을 이해한다”며 위로했다는 후문.

▽모의〓‘3인의 반란’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18일 국회 운영위에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개정안 처리 시도가 한나라당의 저지로 무산되면서부터.

세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한나라당의 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해 울분을 터뜨리면서 자민련 입당행을 논의해오던 터였다. 이들은 모두 예산결산위원으로, 예결위장에서의 자리도 나란히 붙어있다.

▼국회법개정 무산에 급류▼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지난해 7월 의원총회에서 “자민련에 양자(養子)라도 가서 교섭단체를 만들고 공조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송석찬의원. 그는 “이렇게 예산안을 갖고 야당이 발목을 잡으면 경제가 다 무너진다”며 “우리라도 자민련에 가서 교섭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날 밤 송의원은 한나라당의 불참으로 무산된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장재식(張在植)예결위원장과 정세균(丁世均)예결위간사 등에게 자민련행 의사를 밝혔다.

▽지도부와의 협의〓세 의원은 자민련행 결심을 당지도부에 공식 통보한 것이 28일이라고 주장하나, 지도부가 감(感)을 잡은 것은 그 이전으로 보인다.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가 22일 JP와 김종호(金宗鎬)총재대행을 면담하고 난 뒤부터 자민련 내에서 교섭단체 구성에 대한 얘기가 갑자기 사라진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김대표는 24일 국회법 문제를 묻는 기자들에게 “어려운 것을 푸는 게 정치”라며 “임시국회 회기 내에 잘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한나라당도 ‘3인 거사설’을 사전에 인지한 듯하다. 하순봉(河舜鳳)의원은 30일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가 사전에 입수됐지만 설마 설마 했다”며 허탈해했다.

6월 1일민주 자민련 의원 136명, 교섭단체 요건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국회법개정안 제출
12월10일민주 자민련 의원 135명, 국회법 개정안 다시 제출
12월22일이만섭 국회의장, 국회법 직권상정 거부
12월22일민주당 김중권 대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김종호 총재대행 예방
12월24일김중권대표, “교섭단체는 회기 내에 잘 될 것이다. 어려운 것 푸는 게 정치다”고 언급
12월28일김종호대행, “교섭단체는 반드시 만들어진다. 새해에는 희망차게 출발할 것이다”고 발언
12월30일민주당 의원 3명, 자민련 입당
1월초자민련, 교섭단체 등록 예정

<윤영찬·박성원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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