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급감하고 있고 나스닥 지수는 아예 맥을 못추고 있다. 수익성 악화와 그에 따른 정리해고를 발표하는 기업이 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주요 경기지표 중 하나인 제조업활동지수(12월중)는 91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가 이처럼 급속도로 악화되자 그동안 미국의 경기상황을 ‘둔화(slowdown)’라고 부르던 경제학자들은 ‘침체(recession)’라고 한 단계 높여 표현하기 시작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도 최신호(1월8일자)에서 이같은 미국 경제를 침체의 초기단계로 규정하고 이번 ‘신경제’ 경기침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6가지 법칙에 따라 전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속도의 법칙▼
신경제 시대의 시장은 조그만 악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신경제 덕분에 경기가 급상승했지만 그만큼 침체 속도도 빨라졌다는 것. 경제상황을 실시간대에 전달하는 인터넷 때문. 오늘날의 투자자들은 매일 아침 신문을 통해 경제 상황을 파악, 매매 여부를 결정하는 구경제 투자자들과 다르다. 일단 악화되기 시작한 시장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붕괴될 수 있다.
▼'부의 효과'의 법칙▼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가정이 1952년 4%에서 98년에는 49%로 늘어났다. 99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나스닥지수가 각각 25%, 85% 상승했을 때 일반 가정의 자산은 5조5000억달러나 증가했다. 이같은 ‘부의 효과’는 소비증가로 이어진다. 반대로 증시상황이 나빠지면 그만큼 소비심리가 악화되고→기업의 수익이 감소하며→경기가 침체되는 결과를 낳는다. 경기가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것 못지않게 증시가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저실업률의 법칙▼
신경제의 거품의 꺼지면서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기업이 급증했다. 닷컴 기업들뿐만 아니라 구경제 기업들도 직원을 감축한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3.9∼4.1%의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82년(9.7%)과 92년(7.5%) 구경제 침체기에 비하면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준. 이는 호황기에 전문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신경제 기업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고용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해고를 당한 인력들이 다른 일자리를 쉽게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법칙▼
과거에는 나라마다 경기사이클이 달라 미국의 경기침체기에는 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호황의 덕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 국경이 허물어지고 경제의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국가간 경제 동조(同調)화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 경기 상황이 다른 나라를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소비자 피로현상'의 법칙▼
이번 경기 침체의 특징은 더 이상 구매할 것이 많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생각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신경제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많은 첨단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제 레저용 차량이나 펜티엄급 컴퓨터,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MP3플레이어 등을 모두 갖고 있다. 더 이상 살만한 게 없다는 것. 이른바 ‘소비자 피로현상’ 때문에 소비가 줄고 그에 따라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침체는 또 호황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뒤에 도래했다.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나 일반 기업 종사자 대부분은 91년 이후 10여년 만에 처음 ‘추운 겨울’을 맞는 셈. 따라서 경기침체를 극복해 낼 지혜가 부족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관측도 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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