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명/'의원 꿔주기' 백지화 하라

  • 입력 2001년 1월 3일 19시 12분


참으로 안타깝다. 갈수록 악수만 두는 현 정권의 정치적 무능이 우리를 참으로 안타깝게 한다. 소수파 정권으로 시작한 현 집권세력의 불안과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도를 걸어야 살아남는다. 이번에 벌어진 ‘의원 꿔주기’를 보면서 우리의 정치 수준이 왜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날치기를 통해 국회법을 개정하려고 했던 이전의 일은 ‘이해’해 줄만 했다. 그것도 정치 코미디라는 지탄을 받기는 했지만 그나마 소수파 정권의 정치 주도권 획득을 위한 몸부림쯤으로 이해해 줄만은 했다.

▼숫자놀음 정치 애처로워▼

그러나 의원 꿔주기라니, 이는 정말로 이해도 되지 않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민련에 국회 교섭단체의 자격을 주어 공조체제를 만들고 국회의 다수세력이 되고자 한 민주당 지도부의 셈본법이 너무나 어리고 어리석다. 정치를 단순한 숫자 더하기 빼기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단순한 생각이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제 정국이 얼어붙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 잘돼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되고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가 이뤄져 국회에서 그들의 뜻대로 법안들이 통과되고 야당의 견제를 뿌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나라당이 국회를 뿌리치고 거리로 나가서 회기조차 열리지 못한 것이 어제 오늘이던가, 하루 이틀이던가. 그러지 않아도 걸핏하면 거리로 나서는 야당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 놓았으니 어찌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길 기대할 것인가. 다시 정치싸움으로 시작해 정치싸움으로 끝날 한 해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난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왜 이렇게 지도력이 없을까. 왜 이렇게 큰 정치를 생각하지 못하고 좀스러운 머리 굴리기, 야바위, 싸움질밖에 못할까. 그 중에는 유식한 사람도 많고 도덕적인 사람도 있고 통 큰 사람도 있고 마음 넓은 사람도 있을 텐데. 정국의 큰 흐름과 변화의 앞날을 읽어내는 큰 인물이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눈앞의 세력 확대보다는 나라 살림의 앞날을 더 걱정하는 진정한 종복이 없어서일까. 아마 둘 다 아닌가 싶다. 우리 정계에는 큰 인물도 없고 국민의 진정한 봉사자도 없다. 그러니 하는 짓이 싸움질이고 잔머리 굴리기일 뿐이다. 그리고 충성경쟁과 줄 세우기, 줄 서기 뿐인 것이다.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그 중에서 개인 권력을 확립한 우두머리의 충성을 따내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는 것이 정계의 현실이다.

그 중에는 나라의 앞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고, 우두머리 정치의 사슬을 끊고 싶은 진솔한 사람도 있겠고, 비교적 때가 덜 묻은 신선한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 모두 정계에 발을 딛는 순간 타락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거나 봉쇄당하고 만다. 모두 인물 정치, 우두머리 정치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민주당 집권세력이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끌어안을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 무능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로 돌아간다. 꿔준 의원 3명이 결단코 개인적인 결정에 의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말을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다.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말이다.

문제는 이런 행동이 정국 안정이나 민주당의 안정된 통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오히려 이 일이 김대중 정부 몰락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대중 대통령이 또 다른 김영삼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바른 길로 가야 모두가 산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현상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현정부가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난국을 수습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지도력이 부족한 데 있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의원 꿔주기를 원래대로 물리고 한나라당과 큰 타협을 하는 일이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살아남고 한국정치가 살아 남을 길이다. 현정부가 살아야 한국정치가 산다. 또 그래야 국민이 산다. 모두가 살 길은 정치의 바른 길을 찾는 일이다. 바른 길이 무엇인지 정부와 여당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김영명(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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