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초 소로스씨가 금광을 개발하는 미국의 한 광산업체 주식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나자 월스트리트의 펀드 매니저들이 앞다퉈 관련 주식을 사들였고 전세계적으로 금값이 폭등했다. 96년 1월 일본 도쿄의 한 국제 투자세미나장에 나타난 그가 “일본 주가가 비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마디 하자 닛케이주가는 폐장을 앞둔 막판 10분 동안 270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92년 영국 정부를 상대로 파운드화를 놓고 맞대결을 벌여 일주일만에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챙긴 것은 이미 전설로 통한다.
소로스씨가 회장으로 있는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그룹은 헤지펀드를 위주로 100억달러가 넘는 돈을 굴리고 있다. 퀀텀펀드를 비롯해 7개 펀드가 여기에 속해 있다. 69년 출발 당시 자금 규모는 불과 400만달러였으나 연평균 30%가 넘는 투자 수익률을 올리며 한때 200억달러까지 몸집을 불리기도 했다.
소로스씨 자신도 손꼽히는 거부다. 소로스씨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지난해 발표한 미국 400대 부자 순위에서 50억달러의 재산으로 44위를 차지했다.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 이익이 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그에게는 ‘20세기의 연금술사’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세기의 투기꾼’이라는 비난이 늘 붙어다닌다.
97년 당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미얀마 군사정권을 아세안에 받아들인 것을 보복하기 위해 소로스가 동남아시아 각국의 통화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소로스씨를 돈만 아는 투기꾼으로 폄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선사업과 검소한 생활이 늘 화제다.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소로스씨는 검약을 평생 신조로 삼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조그만 원룸 아파트에서 살다가 재혼한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하고서야 2층짜리 주택으로 옮겼다. 늘 코르덴 바지에 낡은 가죽가방 차림이다.
일상생활은 이렇지만 그의 호주머니에선 매년 3억달러 이상의 돈이 자선사업으로 나간다. 그의 말처럼 “부자 나라에서 번 돈을 가난한 나라를 위해 쓰는” 셈이다.
하지만 한 국가를 상대로 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그의 위력이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유로화나 세계의 새로운 우량 기업들이 뉴욕 주가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오면 헤지펀드의 위력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치고 빠지는 헤지펀드의 투자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고 전망했다.
실제 소로스씨 자신도 투자자로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4월 간판 펀드인 퀀텀펀드가 첨단기술주에 발이 묶여 50억달러를 순식간에 날리자 그는 “헤지펀드의 시대는 갔다”고 공식 선언했다. 평생을 함께했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투자 전략 대신 수익이 적더라도 안전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음악은 이미 멈췄는데 사람들은 모르고 여전히 춤을 추고 있는지 모른다.”
당시 그가 탄식처럼 내뱉은 말에서 노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이 느껴진다.
▼소로스의 代韓투자…서울증권 대주주▼
외환위기의 칼바람이 한창이던 98년 1월3일 오후 김포공항에 코르덴 바지와 검은 가죽가방을 든 노인이 나타났다. 바로 국제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 회장이었다.
당시 소로스 회장을 초청한 것은 대통령선거에서 방금 승리한 새정치국민회의. 방한 다음날 그는 대한(對韓) 투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자와 만났다. 김당선자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협약 준수를 위한 자신의 노력을 설명하면서 적극적인 자본 투자를 요청했다.
당시 국내외 금융가에선 국민회의측이 소로스 회장을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해준 사실을 놓고 말이 많았다. 일개 헤지펀드 회장에 불과한 그를 과잉 대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어쨌든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만나 투자를 요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에 그의 영향력과 위상을 한껏 과시했다.
소로스 회장은 99년 2월 서울증권의 최대 주주로 부상해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이어갔다. 지난해에는 소로스 펀드를 중심으로 한국을 투자 대상으로 한 전문펀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울증권과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캐피털Z, 소로스펀드 등 3개사가 참여한 5000만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 전문펀드 ‘서울 Z 캐피털 파트너스 LP’가 바로 그것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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