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1000년의 세기별 인물에도 전쟁의 명수들이 많다. 11세기의 인물은 영국의 ‘정복왕’ 윌리엄. 12세기는 유럽 십자군으로부터 이슬람세계를 지켜낸 살라딘. 13세기는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칭기즈칸. 칭기즈칸의 약탈 도륙 그리고 저항하는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은 기록에서도 피비린내가 묻어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도 몇 년 전 잔혹한 장수 오다 노부나가 붐이 인 것이 생각난다.
▷영웅의 영(英)은 초목의 꽃, 웅(雄)은 짐승 가운데 발군의 것을 뜻한다. 영어의 히어로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 헤라에서 연유하는 ‘보호자’ ‘구해주는 손’의 의미다. 어떤 사전은 영웅이란 ‘새로운 질서나 사상을 위해 싸우는 통찰력과 용기를 지닌 사람’으로 풀어 적고 있다. 역사상 영웅 호걸은 늘 전쟁과 혼란기에 이름을 새겨 놓고 있다. 역으로 그런 걸출한 인걸의 가슴에서 싹튼 작은 ‘꿈’이 전쟁이나 혁명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거칠고 모진 자만 영웅이 아니라는 데 적이 안도하게 된다. 러시아인들도 위대한 인물 3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물리학자 사하로프, 4위에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 5위에 고르바초프 순으로 꼽고 있다. 타임이 뽑은 20세기 인물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러고 보니 타임이 선정한 구텐베르크(15세기) 뉴턴(17세기) 에디슨(19세기)도 우악스러운 전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세계가 진보할수록 우주의 원리나 이치에 다가서는 사람이 영웅시되는 것 같아 반갑다. ‘무혈(無血)영웅’이 많아지는 만큼 세상은 피를 덜 흘리고 평화로울 테니까.
<김충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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