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조정’받는 구조조정

  • 입력 2001년 1월 4일 18시 50분


4일 오후 재정경제부 기자실. 한성택(韓成澤)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이날 오전 진념(陳稔)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 간담회 결과를 설명하면서 올해 거시정책기조가 ‘경기부양’이 아니라 ‘제한적 경기조절’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한국장은 ‘경기부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재정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고 사회간접자본(SOC)예산 증가율도 경제성장률 및 전체 예산증가율보다 낮은 점 등을 들었다.

얼마 후 최중경(崔重卿)금융정책과장이 기자실을 찾았다. 최과장은 “산업은행이 부실기업 회사채를 인수토록 한 결정은 부실기업 구제가 아니라 위축된 회사채시장을 한시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 중 상반기에 63%를 푸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2001년 경제정책운용방향’을 발표했다. 건설교통부는 △6개 신시가지 개발 △파주 대전 등 5개 지역의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화 추진 △화성 신도시 개발방침 등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냈다. 민주당 강운태(姜雲太)제2정책조정위원장은 “증시부양을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율을 크게 늘리기 위한 당정협의를 이달 중 갖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박하고 있지만 여러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산은의 부실기업 회사채 인수가 구조조정을 늦출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기가 갈수록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경기를 떠받친 뒤 하반기 자율회복을 유도하려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죽은 뒤에 수술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이 그동안 “단기간의 고통을 각오하더라도 구조조정부터 끝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온 점을 떠올리면 ‘경제정책의 현주소’가 어딘지 궁금하다.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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