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정털보. 이름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한자씩을 따서 스스로 지은 정지섬(그는 본명과 나이 밝히기를 극히 꺼린다). 금요일밤이나 토요일 새벽, 삶의 터전인 서울을 떠나 거의 매주 한번씩 지리산으로 ‘출가 산행’을 떠나는 그는 이를 ‘소요(逍遙)’, 혹은 ‘만행(卍行)’이라 명명한다.》
그가 ‘지리산 소요’ 700번째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7월의 반야봉∼묘향대∼뱀사골∼하동 목통골 코스 산행. 600번째는 97년 4월 대성골∼의신∼세석평전∼한신계곡 코스에서, 500번째는 95년 4월 뱀사골에서, 400번째는 92년11월 추성동에서 맞았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산중에 지리산일까.
“지리산은 깊고 넓고,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다. 사람들은 지리산이 세상에서 깨지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품어주는 어미 같은 산으로만 안다. 그러나 지리산의 진짜 매력은 기상이 장대해 거칠 게 없다는데 있다. 한 30년은 그 널찍한 등 위에서 뛰놀아봐야 그 모든 것을 알수 있는 산이다. 왜 누드 사진을 찍어도 그 여자와 한 3년 정도는 살아보고 찍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 30여년 다니다 보니 이제 지리산을 좀 알 것 같긴 한데 누가 ‘지리산이 어떻더냐’고 물으면 할말은 갈수록 없어진다.”
▼지리산-섬진강에서 이름 따▼
하지만 그의 지리산 예찬론은 말그대로 거칠 게 없다. “책을 1000권 읽는 것보다 지리산 종주 10번 하는 것이 훨씬 낫다. 계절을 바꿔서 종주를 해보고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혹은 그 역으로 종주를 해보면 인생이 저절로 보인다. 신라 화랑들이 왜 세석평전에서 수행했을까. 왜 신선을 뜻하는 선(仙)자가 사람인(人) 변에 뫼산(山)자 일까. 산과 하나가 되면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산행법을 ‘오프라인 산행’이라 한다. 한번 주파거리는 50∼75㎞. 40대 중반까지는 75∼100㎞였다. 산행시간은 보통 금요일 밤 11시쯤부터 다음날 오후 6시쯤까지. 야간에 ‘길없는 길’로만 다니는 게 기본이고 ‘혼자’가 원칙이다. 도중에 혹시 사람을 만나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산 보러 갔는데 왜 사람보고 아는 체 하느냐’는 게 이유다.
정씨가 말하는 ‘지리산 종주코스’도 흔히 말하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코스가 아니다. 인월을 출발해 바래봉∼세걸산∼만복대∼성삼재∼노고단(1박)∼천왕봉∼하봉∼쑥밭재(1박)∼외골 왕등재∼웅석봉을 거쳐 경호강의 심거나루나 덕천강 백운리로 빠진다. 물론 보통사람들은 따라잡기 힘든 속보(速步)다. 그런데도 그의 말은 정작 딴판이다.
“산은 천천히 가는 게 빨리 가는 것이다. 빨리 걸으면 50분, 천천히 걸으면 30분 걸린다. 고개를 만나면 사람들은 더 힘을 내려고 용을 쓴다. 나는 고개를 만나면 힘과 속도를 4분의 1로 줄인다. 사는 것이나 산행이나 자기 페이스를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산행은 호흡으로 하는 것이지 다리로 가는 게 아니다.”
▼야간에 길없는 곳만 다녀▼
곰을 7번이나 정면으로 만나는 등 지리산에서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는 정씨의 야생동물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짐승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왜 TV에서 지리산에 곰이 있다고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전국의 밀렵꾼들이 다 몰려들텐데. 학자들이 생태계 조사하는 정도는 몰라도 TV에 한번 나가면 꾼들은 금방 그곳이 어딘지 안다. 덫 올무는 이제 사람까지 잡게 생겼다. 정말 큰일이다.”
정씨가 꼽는 지리산의 백미(白眉)는 어디일까. 그것은 단연 황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남동부 황금능선. 천왕봉을 출발해 중봉∼쓰리봉∼치밭목∼국사봉∼구곡산∼국동을 거쳐 남명 조식선생의 사당이 있는 산천재에 이르는 길. 황룡의 맥이 끝난 곳에 산천재가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있단다.
▼'황금능선'이 가장 아름다워▼
평일엔 뭘 할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묻지 마라. 돈은 먹고 살 만큼 번다. 무슨 책을 읽느냐고? 노자, 장자, 각종 불교서적, 주역, 제갈공명의 기문둔갑(奇門遁甲), 침구(鍼灸)서적 상한론(傷寒論) 황제내경(黃帝內經) 등 한의학서적, 음양오행이론서적, 명리학(命理學)서적, 한국고미술 한국고대사 고고인류학 관련 책자 등등.”
3년 전엔 ‘사주팔자와 숙명’이란 책도 직접 펴냈다. 정씨의 스승은 한의학계에서 명리한의학 강의로 유명한 화성선생 이정근(李正根)옹. 정씨의 이 분야 내공도 만만치 않다. 정씨가 보는 새해 나라운세는 어떨까.
“한마디로 88올림픽 뒤인 90년도의 혼란한 상황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쇠(金)를 불(火)이 머리에 이고 있는 형국이라 쇠가 녹아 줄줄 흘러 내린다. 폐와 골수(뼈)질환이 많다. 미국 부시대통령이 스트레스 좀 주겠지만 그리 염려할 건 못된다. 경제가 나아져야 할텐데 그럴 기미가 전혀 안보여 걱정이다.”
▼환갑전 1000회 등반이 목표▼
정씨는 환갑때까지 지리산을 1000번 오르려고 한다. 그런 다음엔 태백산 주위에서 한 6년 어정거리고 인생을 마감할 때 쯤이면 문경 상주부근의 소백산줄기에 터전을 잡겠다고 한다.
정씨의 으뜸 욕심은 지리산을 닮는 것. 그러나 과연 생전에 그 욕심을 채울 수 있을는지,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고도 멀다”는 정씨는 이렇게 ‘지리산론’을 마무리했다.
“흔히 늙으면 시골가서 여생을 편히 보내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늙을수록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지리산이나 시골은 기가 세고 힘이 있는 젊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나같은 사람은 도시에 살면서 산에 왔다갔다 하면서 사는 게 좋다. 어떤 사람이 ‘시골가서 살아야겠다’고 말하면 그 순간 그 사람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생명체란 활기를 잃으면 끝이다. 끝없이 부대끼면서 사는 것 자체가 바로 삶인데…. 그래서 꼭 길 난 데로만 가고, 꼬박꼬박 산장에서 잠자고, 겉멋에만 치우친 요즘 젊은세대들의 ‘온라인 산행’은 맘에 안든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