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 시인 황지우가 자신들의 신간 출판에 즈음해 TV에 앞치마를 두르고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책 광고에선 그럴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가들의 주먹만한 얼굴 사진들을 거의 매일 본다. 보면서, 영화감독인 내가 느끼는 건 어떤 안도감이다. 영화를 파는데는 어디까지나 배우, 스타의 얼굴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타없이 순 신인만 데리고 찍은 ‘눈물’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무도 신인 배우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세울 얼굴이 없는 홍보 담당자는 난감해질 수 밖에 없고 영화사 사장은 감독이라도 나서서 박광수 감독의 디지털 영화 제목처럼 ‘빤스 벗고 뛰기’를 강요한다. 그래봤자 이제 겨우 영화 두 편을 찍은 신인 감독에겐 앞치마를 찰 기회 따위란 오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개봉을 코앞에 두고 시사회를 열고나면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건 매체의 파급력과 인터뷰의 질은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사실이다.
모 방송국에서 온 PD는 아주 점잖고 유순하게 생긴 분이었다. 사무실에 조명을 설치하고 밖에서 들려오는 몇가지 소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하는 뻔한 질문들을 던진다.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도 짧게, 인터뷰라기보다는 몇가지 멘트를 따고는 총총히 사라져버린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홍보 담당자와 무색해 하는 나를 남겨두고.
반면에 영화 전문지 ‘키노’의 인터뷰는 한국 감독들은 물론이고 외국 감독들도 인정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잡지는 내용이 어려워 잘 팔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는 게 또 냉랭한 현실이다.
‘키노’와 그 방송 사이에 영화 주간지, 일간신문, 스포츠신문 등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을 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홍보 담당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파급력 강한 매체, 방송국을 엮어보지 못해 안달이다. 그래서 방송이 좋아하는 소위 스타들을 어떤 얼굴값을 치르고라도 캐스팅하려 드는 것일테고.
작가나 감독이 작품을 만들고 난 뒤 여기저기 나와서 떠드는 모든 종류의 말은 전부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무 잘난 척 하는 거다. 반대로 작품에 대한 그럴듯한 토론이나 해설은 그 자체로 의미있고 그걸 통해 대중과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왠지 솔직하진 않은 것 같다. 우린 그저 어떻게든 작품을 그 깜냥만큼이나마 팔아서 살아남고 싶을 뿐이다.
어쨌거나 난 우리시대의 인물 황석영이나 황지우가 TV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고싶지 않다. 그들에겐 그것보다 훨씬 소중한 보고 들을 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영화감독>
namu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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