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공연단 ‘뭉치’의 신나는 ‘모둠 북’ 공연에 이어 어린이 중창단의 캐럴이 울려 퍼지자 무표정하게 지나치던 승객들이 순간 눈과 귀를 곧추 세운다.
이런 익숙지 않은 공연문화에 다소 멋쩍은 표정이던 관객들도 재즈댄스가 이어지자 이내 긴장을 풀고 손뼉을 치며 어깨를 들썩인다. 이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앙코르’. 예술가와 시민이 하나가 된다.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 이런 행사와 마주치니 정말 즐겁고 고맙네요.”
장단에 맞춰 손뼉을 치던 주부 우순자(禹順子·45·서울 관악구 봉천동)씨. 그러나 “이제 김장하러 가야 한다”며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지하철은 이제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손쉽게 예술문화와 대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매주 지정된 시간대에 사당역을 비롯해 경복궁 이수 광화문 등 12개 역에 가면 이런 예술과 만난다. 춤과 노래뿐만이 아니다.
판소리 발레는 물론 판토마임 연극 관현악 시낭송 등 온갖 장르의 예술이 등장한다. 지난해 공연횟수는 385회, 참가한 예술인만도 1000여명에 이른다.
‘운수 좋은 날’에만 볼 수 있는 ‘일회성’ 공연도 많다. 1기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지하철공사는 지난해 창무회 조승미발레단 등 유명 극단이나 무용단 연주단을 초청해 품격 높은 공연을 선물로 안겼던 것.
열차를 직접 타고 가면서 비디오 그림 연주 등을 감상하거나 직접 댄스를 즐길 수도 있다. 도시철도공사가 운행하는 문화예술열차가 바로 그것. 이는 문화공간을 역사(驛舍)에서 전동차 안으로까지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역사 내의 공연문화는 파리 뉴욕 등 외국도시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지만 이런 열차는 우리나라가 단연코 처음. 현재 5, 6호선에 ‘산타 열차’와 ‘디지털문화 열차’가 매일 4∼6회씩 다닌다. 운이 좋으면 지하철에서 산타클로스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
지난해 7호선에 한시적으로 운영한 ‘달리는 문화예술관’엔 임옥상 최호철씨 등 중견작가들이 만화 등으로 전동차를 수준 높은 작품 공간으로 만들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지하철 예술공연의 한가지 특징은 참가자들이 모두 자원봉사하였다는 점. 스스로 대중을 찾아가려는 예술가들의 의지가 돋보인다. 품격 있고 풍성한 문화도시와 그 도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보다.
지하철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수요자인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대목. 지난해 5월 각종 행사가 선을 뵐 때만 해도 50명도 안되던 관객들이 최근 150∼3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지하철측이 올해 문화예술행사를 2배로 늘리겠다는 이유를 알 만하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