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 드브레 지음 갈리마르 출판사
“지금의 프랑스 지식인은 마귀를 좇는 사람에 불과하다. 어수선하고 난해한 시대, 지식인들은 한 술 더 떠 세상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도 동시대인이 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그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프랑스 지식인의 종말을 외친 프랑스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 그가 지난해말 출간한 ‘프랑스 지식인, 후속과 종말’이 요즘 파리의 지식인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주간지 ‘렉스프레스’와 ‘마리안느’가 먼저 이 책을 계기로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 잡지는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작가 필립 솔레르스 등 신문과 TV 라디오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지식인의 이름을 공공연히 밝히며 그들의 ‘시류 타기’와 ‘상황 판단의 오류’를 비판했다.
그러자 비판당한 지식인들은 최근 ‘르 몽드’지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을 반격함으로써 논란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드브레는 1960년 프랑스 최고 명문 고등사범학교 수석입학자로, 졸업 후 남미로 건너가 혁명가 체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에서 활약하다가 볼리비아에서 체포돼 30년형을 선고 받았던 인물. 그 후 프랑스 정부의 노력으로 1970년 석방된 뒤 19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자문역을 지냈다.
아울러 ‘프랑스에서 지식인의 힘’, ‘유혹하는 국가’, ‘매체론적 선언’, ‘매체론 입문서’ 등 수 많은 철학서를 통해 언론 매체와 권력과의 관계를 분석해 매체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해변의 젊은이’로 1967년 문단에 등장, ‘눈(雪)이 탄다’라는 소설로 훼미나 상을 수상하면서 지금까지 10여권이 넘는 소설을 발표한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드레퓌스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1898)라는 팜플렛을 발표해 진실을 규명하려 했던 작가 에밀 졸라를 진정한 지식인으로 부른다. 졸라 이후에도 프랑스 지식인들은 현실의 명철한 관찰자로서 정치 사회문제에 진지하게 참여해왔지만 20세기말에 들어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통탄한다.
드브레에 따르면, 프랑스 지식인들은 코소보, 체첸, 알제리 등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장에 나타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매스컴에 얼굴을 들이밀어 명성을 올리고자 할 따름이다. 결국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기자들과 영합해 대중의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
19세기초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프랑스 대중과 정치인은 속세의 지식인이 필요했다. 대중은 윤리적 지표를 마련하기 위해, 정치가들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권(神權)을 지닌 성직자가 아닌 현실 속의 지식인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성직자들의 역할을 대신했던 프랑스 지식인.
그런데 이 책은 그같은 역할을 해왔던 프랑스 지식인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선언하고 있다. 21세기 프랑스인의 정신적 지도자는 누가 될 것인가. 흥미롭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조혜영(프랑스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