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③번. ①번 ‘유치하다’를 꼽은 학생은 틀렸다. 그 학생은 “암만 생각해도 엄마와 갓난아기의 대화내용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며 끝내 납득하지 않았다.
느낌의 객관화. 과연 느낌에 맞고 틀린 게 있고, 객관화가 가능할까. 어쨌든 아이들은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하고 이 과정을 고교 3학년까지 수없이 반복한 끝에야 대학에 들어간다.
2001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놓고 ‘점수 인플레’니 ‘물 수능’이니 말이 많다. 대학은 변별력이 없다고 불만이었다. 교사, 학생, 일부 학부모도 지원에 혼란을 겪는다며 아우성을 쳤다. 비판한 쪽은 대체로 일부 유명대였다. 또 몇 점 더 올리기 위해 자녀에게 고액과외를 시킨 사람이 많았다. 모두 ‘기득권’의 목소리다. 학생과 학부모는 제도의 피해자일 수 있으므로 별개로 치자.
수능 만점인 학생이 내신성적 때문에 서울대 대신 하버드대를 택해 합격한 사실이 알려지자 ‘만점짜리의 탈락’에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대 총장의 ‘반성’까지 나왔다. 그러나 대입에서는 만점짜리도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왜 떨어지느냐의 문제다. 만점짜리가 또 다른 ‘점수’인 내신성적을 더한 결과 떨어진다면 암기 능력 중심의 측정이 이중삼중으로 대입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그러나 리더십 판단력 봉사정신 창의력 등을 측정해 탈락시킨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특히 양보심은 주요 덕목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상위권 5%를 ‘수’로 평가해 왔다. 객관식에서 한 문제 틀린 것과 다 맞은 것에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물론 암기식 공부는 중요하다. 아날로그적 지식에 기반하지 않고 디지털문화를 일궈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입제도는 대학을 종(縱)으로 스펙트럼화해 놓았다. 포괄적 의미의 ‘명문대’는 사라졌다. 대학은 정확히 수능 성적에 따라 1등, 2등, 3등, 4등, 5등 대학과 중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으로 서열화됐다. 과거에는 ‘1.5등 대학들’과 ‘2위권’이 있었다. 대학간 입학성적의 차는 있었지만 일정부분 ‘교집합’이 있었다. 지방대에도 ‘1위 대학’ 실력이 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얼마전 교육부는 기업체가 대졸사원을 뽑을 때 지방대 출신에게 응시 기회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올해 제정하겠다는 내용의 ‘지방대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웃기는 이야기다. 점수 스펙트럼에 의해 중하위권 학생만 집중되는데 ‘기회의 균등’이 무슨 소용일까.
명문대는 사회에 필요한 리더를 길러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위권대는 ‘암기능력 상위권’이며 ‘자칭 명문대’에 불과하다. 직업현장에서 볼 때 졸업생들이 리더십에서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의 한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1학년 때 보면 동양계, 특히 한국 학생이 단연 우수합니다. 백인 학생들은 ‘인간이 될까’ 싶고 2학년이 돼도 마찬가지입니다. 3학년 2학기에 성적이 비슷해지고 4학년 이후에는 확실한 역전이 이뤄집니다.”
홍호표(부국장대우 이슈부장)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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