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송위, 잘못가고 있다

  • 입력 2001년 1월 7일 19시 11분


방송위원회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심의와 함께 방송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방송 정책의 최고 집행기구다. 5년간의 산고 끝에 지난해 초 만들어진 통합방송법은 새 방송위가 외부의 어떤 힘에도 흔들리지 않고 방송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방송위는 지금 그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저질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판치는데도 이를 거의 규제하지 못하고 있고, 권력과 정치에도 휘둘리고 있다. 국민 사이에서는 방송위가 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공영이건 민영이건, 공중파건 케이블TV건 방송사들은 지금 시청률에 매달려 ‘저질 경쟁’이 한창이다. 평일 주요 시간대나 주말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보기 민망한 프로그램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신변 잡담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집중 편성되고 있고 비속어, 국적 불명의 외국어, 선정적인 표현 등이 범람하고 있다. 시사프로그램까지 성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방송위는 솜방망이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는 어느 프로그램에 대해 제재를 내려도 방송사가 거의 개의치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방송위가 최근 전 자민련 국회의원인 이긍규(李肯珪)씨를 방송위 상임위원으로 선출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거세다. 비록 소급해서 탈당하긴 했지만 추천 당시 그는 자민련 당적 보유자였다. 이는 당적 보유를 결격 사유로 명시한 방송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기자협회회장을 지냈으나 방송에 대한 전문성과 시청자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방송위가 낙선의원 등의 일자리를 처리해 주는 곳이 돼서는 안된다. 이씨의 방송위원 선정은 방송위가 정치권의 잘못된 주문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는 빌미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방송 3사가 스포츠중계권을 둘러싸고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일 때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등 방송위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공중파와 케이블 TV에 이어 머지않아 수십개 채널을 가진 위성방송이 생겨나는 등 급변하는 방송 환경 속에 방송위가 할 일은 참으로 많다. 방송위는 지금이라도 이같은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고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또 정치나 권력으로부터의 입김을 차단할 수 있는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방송위가 살아야 방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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