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지난해 6월2일 자전거 답사도중 라오닝성 반둥의 한 시골길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당시 55세. 사인은 과로사였다.
그의 항일유적 답사는 지난 83년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자전거 답사에 뛰어든 것은 92년부터였다. 답사의 속도보다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사망 속도가 빨라 마음이 급해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한번 길을 떠나면 10개월정도 걸리는 '자전거 행군'을 반복했다. 끼니와 잠은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해결했다.
그는 95년 7월 뇌혈전으로 쓰러져 반신불구 상태가 된 적이 있다. 1년여의 투병끝에 건강을 회복했지만 장기요양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자전거 답사에 나섰다. 폭우속에서 자전거를 둘러메고 산길을 넘기도 하고, 빙판길 혹한을 견뎌내기도 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그는 1400여명의 동포 노인들을 만났고 156명의 강제징병 피해자, 9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원고지 2000여장에 깨알같이 적어두었다.
그의 이 마지막 유고가 최근 경남 진주지역 한 기업인의 도움으로 출간됐다.
'강제징병자와 종군위안부의 증언'과 '끌려간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도서출판 해와 달)이 바로 그것. 경남 진주의 태화건설 오효정(61)사장이 사비 4000만원을 들여 출간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원하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배포해 준다.(문의전화 055-758-1670)
살아생전 그는 가난했다. 한달월급 600원. 옌볜사회과학원 한켠의 창고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가 자전거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래도 그는 "엉덩이는 짓무르지만 선조들이 피 흘리며 싸운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노라면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 어느 누가 자전거 한대에 몸을 의지한채 차가운 만주벌판을 오갈 것인가? 만주의 칼바람속에서도 허허롭게 웃으며 "난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뒤늦게나마 가난한 조선족2세 사학자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
최용석/ 동아닷컴기자 duck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