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3시경 서울대 어린이병원 5층. 열흘 전 심장병 수술을 받고 소생한, 생후 2개월난 경호가 엄마 이영숙씨(27·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살아있다는 외침이었다.
이씨의 머리 속에선 한 달 전 병원에서 ‘포기각서’를 쓰던 때와 시어머니가 “핏덩이에게 어떻게 칼을 대느냐”고 수술을 말리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씨는 지난해 11월9일 제왕절개로 경호를 낳았다. 몸무게 2.8㎏여서 웬지 불안했다. 이씨는고 1주 뒤 “아기가 우유를 먹지 않고 몸이 붓는 등 심상치 않다”는 의사의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진주의 K대병원을 거쳐 부산 D대병원으로 옮겼지만 의사는 1주일 만에 “뇌혈관까지 터졌으니 2, 3일 밖에 못산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호는 집에서 한 달을 버텼다. 의사는 “아기의 살려는 의지가 기적을 일으켰다”면서 서울에서 수술받기를 권했다.
경호의 심장은 온갖 심장기형의 집합체였다. 경호의 병을 알려면 심장에서 혈액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아야 한다.
온몸을 돈 더러운 피는 정맥을 통해 우심방으로 들어온다. 이 피는 우심실, 폐동맥을 거쳐 허파로 들어간다. 허파에선 혈액의 이산화탄소를 버리고 산소를 담는다. 깨끗해진 피는 폐정맥, 좌심방, 좌심실을 거쳐 대동맥을 통해 온몸으로 흘러간다.
한편 태아는 허파로 숨쉬지 않기 때문에 정맥의 피가 허파를 거치지 않고 심장을 돈 다음 대동맥을 통해 곧바로 온몸으로 나간다. 이때 정맥과 동맥을 연결하는 길이 동맥관. 태어나서 곧 닫힌다.
경호는 심방 사이에 큰 구멍이 있어 좌심방으로 들어온 피가 우심방으로 흘러들었다. 이 때문에 오른심장은 커지고 왼심장이 쪼그라든 상태. 폐동맥 혈압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하행대동맥 입구는 막혀 있었고 대신 동맥관은 계속 열려 있는 ‘동맥관 개존’.
경호는 응급실에서 이틀 있다 28일 오전 6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5시간이 걸렸다. 수술팀은 경호의 가슴을 열어 상행대동맥과 하행대동맥을 연결하고 심방 사이의 구멍을 메웠다.
이씨는 수술실 밖에서 가슴이 탔다. 오전 11시경 수술실 문이 열렸다. 담당의사는 “수술은 잘 됐는데 아이가 적응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황급히 수술실로 되돌아갔다. 10분 뒤 의사는 다시 나왔다. “살 수 있습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주치의 한마디
선천심장병은 신생아 1000명 가운데 7, 8명에게 나타나는 비교적 흔한 병이다. 심장의 피를 동맥으로 보내는 심실 사이에 구멍이 난 심실중격결손이 가장 많고 이어 심방중격결손, 동맥관개존 등의 순으로 많다.
선천심장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요인에 환경요인이 겹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 요인은 흡연 약물 공해 바이러스감염 등을 가리킨다. 고령 임신일 때는 심장병이 있는 아기를 낳을 위험이 높아진다. 그러나 경호의 어머니 이씨처럼 뚜렷한 원인이 없는데도 심장병이 있는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임신부는 술 담배를 금하고 약은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한다. 결혼 전 풍진 백신을 맞아야 하며 감기 당뇨병 등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천심장병도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임신부는 반드시 복부초음파를 받아야 한다.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빨리 수술받는 것이 좋다. 일부 의사조차도 아기가 생후 10개월이 지나고 몸무게가 10㎏이 넘어야 수술할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나이 몸무게와 상관없이 수술할 수 있다. 아기 심장병 환자의 60∼70%를 4∼6㎝ 절개해 수술하며 30∼40%를 가슴을 활짝 열어 수술한다. 이 두 경우를 합쳐 90%가 한 번에 치료된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은 어린이의 97%가 튼튼하게 지내고 있다.
김용진(서울대병원·소아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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