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정권 인수작업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각료 구성, 즉 조각입니다. 특히 이번 조각은 텍사스 주지사 출신으로 중앙무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시 당선자의 통치스타일을 가늠케 해주는 중요한 지표라는 점에서, 나아가 부시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중도 노선의 초당파적인 통합론자를 자임해 왔을 뿐만 아니라 개표문제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볼 때, 모습을 드러낸 조각은 기대에 부응한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핵심부서가 아니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노먼 미네타 현 상무부장관을 교통부장관으로 지명함으로써 개표 과정의 논란과 관련해 자신이 당선되면 초당파적 조각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또 이번 조각은 여성장관 4명에, 아프리카계 2명, 히스패닉계 2명, 아시아계 1명, 아랍계 1명을 포함하는 등 역대 공화당 정부 가운데 가장 많은 소수민족과 여성을 포함시킨, 가장 다양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겉모습만 보자면, 보수적인 공화당의 각료팀이 아니라 진보적인 재시 잭슨 목사가 1980년대 민주당 대통령후보 예비선거에 출마하며 내걸었던 무지개연합의 각료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같은 중도노선과 다양성은 겉모습에 불과한 ‘무늬만의 중도노선’ ‘무늬만의 다양성’일 뿐 실제 내용은 보수와 극우 일변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불법체류자 고용문제로 자진사퇴한 린다 차베스 노동부장관 지명자의 경우였습니다. 그는 여성인데다가 대표적인 소외된 소수민족의 하나인 히스패닉계지만 정치적 입장은 반여성, 반소수민족적이라는 것이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비롯한 소수민족들과 여성계의 일반적인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소수민족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제정돼 실시해 오고 있는 사회적 약자 고용촉진법(Affirmative Act), 소수민족을 고려한 이중언어교육 등에 격렬하게 반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차베스의 지명에 대해 비즈니스계와 보수적 백인들은 잘된 인사라고 박수를 친 반면 정작 소수민족들과 노동조합 등은 실망감과 우려를 표명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한 주요언론은 외형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각의 핵심은 “14명의 공화당과 미네타”로 요약된다고 꼬집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시 당선자는 인권문제를 포함한 법 집행에서 최고책임자인 법무장관에 초극우파인 존 애시크로프트 상원의원을 임명함으로써 엄청난 반발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도 낙태해서는 안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피력해온 애시크로프트 의원은 특히 얼마 전 자신의 지역구인 미주리주의 유능한 아프리카계 법관인 라니 화이트의 연방판사 인준을 정당한 이유 없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동을 해와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번 상원의원 선거에서 선거 도중에민주당 후보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법무장관에 임명하자 아프리카계는 펄펄 뛰고 있고 민주당 역시 인사청문회를 벼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언론들이 허니문 시기라는 이유로 비판을 자제하고 있지만 부시 당선자는 첫 조각에서 대선의 상처를 치유하고 중도노선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앨 고어 부통령이 직접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계 의원들은 부시 당선을 인증하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대선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항의서를 제출하고 퇴장했습니다.
또 아프리카계와 여성, 인권, 환경 단체들은 이번 대선을 “도둑맞은 선거”로 규정, 20일에 열릴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보이콧할 뿐만 아니라 취임식에 맞추어 대규모 항의집회를 워싱턴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이래저래 당선에 이어 취임 후에도 잡음이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현 UCLA 교환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