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하기 어려운 '곡절' 시사▼
그렇다고 강부총재가 96년 15대 총선 당시 ‘돈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안기부 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특히 11일 기자회견에서 “15대 총선 자금에 일부 밝힐 수 없는 돈도 포함됐다”고 밝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뭔가 공개하기 어려운 곡절이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에 따라 안기부 돈이 당시 청와대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 등을 경유해서 신한국당으로 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여권은 김기섭(金己燮)전안기부기조실장과 강부총재에게만 이번 사건의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어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
이와 관련, YS가 11일 저녁 김상현(金相賢)민국당 최고위원, 정대철(鄭大哲)민주당 최고위원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선거 때 여러 (재벌)그룹사들이 집권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강부총재가 언급한 ‘밝힐 수 없는 돈’의 일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1000억원대의 돈이 검찰의 주장대로 모두 국고를 횡령한 것인지, 아니면 ‘세탁된 정치자금’인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한보사건 때와 유사한 ‘몸통―깃털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보사건 재판 가능성▼
즉 여권과 검찰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깃털’에 지나지 않는 강부총재나 김기섭씨 선에서 이번 사건을 마무리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해찬(李海瓚)최고위원은 “강부총재가 ‘안기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 것은 실수”라며 “그렇다면 YS가 받아 건네줬다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YS가 직접 나서서 해명을 하든지, 아니면 대여(對與) 공격을 주도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환의(李桓儀)부총재가 11일 “YS는 더 이상 엄포만 놓지 말고 DJ 비자금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될 경우 YS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 여권이 미리부터 선을 긋고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김창혁·송인수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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