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약속한 이 날 새벽 3시부터 '들국화 헌정앨범' 작업에 KBS '서세원쇼' 출연, 모 월간지와 인터뷰를 한 뒤여서인지 이들은 힘들어 보였다.
베이지색에서 보라색으로 머리색을 바꾼 신해철은 탁자에 몸을 의지한 채 "힘들어" "졸립다"를 연발했고 데빈 리와 임형빈 역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해 연말 데뷔앨범 '파트 1: A Man's Life' 발매 이후 연일 방송 출연에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 요즘 무척 바쁘게 지내는 것 같은데.
- 신해철(해철): 먹고 자고 매니저가 잡아놓은 스케줄 따라다니고…. 그렇게 살고 있다.
▼ TV에 자주 얼굴을 보인다.
- 해철: 음…. 감흥은 별로 없다. '신생 밴드의 프로모션' 개념일 뿐이다. 방금 토크쇼 갔다왔는데 배꼽 빠지도록 웃기는 했다.
▼ 얼마전 가요순위 프로에서 폭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립싱크로 노래를 하는 모습을 봤다.
- 해철: 방송에서는 라이브로 노래할 수 있는 음악적인 환경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프로에서는 생음악을 들려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라이브는 콘서트에서 보면 되는 거 아닌가?
▼ 머리색이 또 바뀌었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나?
-해철: 특별한 의미는 없다. 하얗게 탈색을 하니까 주위에서 늙어 보인다고 해서 보라와 핑크색으로 염색을 한 것 뿐이다.
▼ 이번 음반은 전체 컨셉이 한편의 록 뮤지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타터' '메인 디쉬''디저트' 등 새로운 형식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 해철: 보여줄 것은 없다.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고 세명이 뭉쳐 '몸에서 솟아오르는 음악 한번 해보자'고 나선 것 뿐이다. 항간에 우리가 '요란스럽지 않다'고 왈가왈부 하는 모양인데, 신경쓰지 않는다. 이번 앨범은 정말 본능적으로 작업했고 권투로 치면 자연스러운 펀치같은 음악이다.
▼ 그렇다면 '무한궤도' , 솔로, '넥스트' 시절과 비교해 이번 앨범은 몇점이나 줄 수 있겠나?
- 우리 음반을 스스로 몇점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높은 점수를 주면 자기 자랑이고 낮은 점수를 매기면 음반이 안 팔린다.(웃음)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유치함이 느껴지는 대작보다 상대적으로 덜 화려한 이번 앨범은 만족스럽다. 가볍게 시작해 묵직하게 끝나는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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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재기발랄한 록 사운드, 비트겐슈타인 1집 |
*'들국화' 헌정음반에서 '사랑한 후에' 부르기로
▼새 멤버들, 데빈 리(기타, 베이스, 작곡)와 임형빈(DJ, 키보드, 보컬, 작곡)은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고 지금의 비트겐슈타인 멤버가 됐는지 궁금하다.
- 임형빈: 외국어대를 다니면서 음반 작업을 하던 중 드럼 주자 남궁연 씨를 만나 크롬(신해철의 별칭)의 '일상으로 초대' 건반 세션을 맡게 됐다. 그 인연으로 미국에서 음악 작업을 함께 하면서 해철 형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이번 앨범에서 힙합 리듬 진행이 독특한 '압박'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데빈 리: 미국에서 13살때부터 기타를 배웠고 '패션그릴' '루'라는 밴드를 조직해 유명 그룹의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해철 형을 만난 건 99년 겨울이었다. 즐겁게 음악 작업에 임했다.
▼ '들국화' 트리뷰트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 존경하는 음악 선배를 위한 작업인데 당연하다. 전인권 선배가 모 인터뷰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를 가수가 녹음을 미뤄서 트리뷰트 음반이 늦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듣곤 요즘 줄창 작업을 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부를 노래는 전인권 선배가 가장 아낀다는 '사랑한 후에'다. 솔직히 이 노래 제대로 부를 가수 별로 없다. 나 역시…. 하지만 열심히 부를 생각이다. 이번주 중에 마지막 주자로 녹음을 완료할 예정이다.(이달 말경 발매될 들국화 헌정 앨범에 참여하려 했던 서태지는 전국 투어 관계로 불참하게 됐다고 한다)
▼ 노래를 많이 만들어 놓았을 것 같은데, 후속 앨범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 해철: 50곡 정도 준비해 놓았지만 아직 정리를 못했다. 새 앨범 낸지 얼마 안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차기작 제목은 아마 'A Man's Life 파트 2'가 되지 않을까? 아닐 수도 있고.(웃음)
▼ 비트겐슈타인의 신해철과 서태지의 복귀로 한국 가요계에 활력소가 됐다.
- 과분한 얘기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 달라.
인터뷰가 "끝났다"고 하자 비트겐슈타인 멤버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하지만 이들은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카페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음악 평론가 강헌 씨(들국화 헌정음반 기획자)와 다시 음악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면서 기자는 신해철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고 물었다.
"매니저들이 우리를 놓아주는 순간 우리는 바로 떠날거구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 계획? 음악 하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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