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모두를 향한 개탄과 비아냥과 증오가 판치는 시속의 악다구니 속에서 이들의 존재는 시렁에 얹어둔 별유천지. 차마 가르침대로 살 수는 없으되 마음만은 ‘그 섬에 가고 싶다’ 같은 눈물겨운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법정스님의 에세이 선집이 나왔다. 베스트 앤솔로지라기 보다는 엮은이이기도 한 류시화 풍으로 계절감을 피력한 대목만을 짧막짧막 추려 일종의 잠언집처럼 구성했고, 말미에는 스님의 편지글도 함께 묶여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계절들의 이름이 곧장 환기시키는 것이 자연의 풍광이듯이 글 전편에는 산거의 한적함과 더불어 다람쥐, 노루, 쏙독새, 휘파람새, 후박나무, 파초, 그리고 무엇보다 산내음이 흠씬하다.
고승대덕의 학덕이나 ‘할!’을 기대했다가는 뒷통수 맞은 기분이 들기 십상이다. 스님은 그저 ‘어제는 삼십리 밖 장에 가서 두부 한 모, 아욱 한 단, 식빵 한 줄, 낫 한 자루, 연필 두 자루를 사왔네’라고 지인에게 졸박한 편지를 쓸 따름이다.
일찍이 월든 호숫가의 헨리 소로우가 앞서 있었고 가까이는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가 각광을 받는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최근의 달라이 라마 선풍을 연결지어도 좋다. 이즘(ism)에 익숙하다면 이름하여 자연주의, 영성주의, 집산주의, 생태주의 등등. 무언가 정신의 공기압이 이동하고 있는 게 체감된다.
아니 이동해야 한다는 외침이 아직은 앞선다. 그것은 분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궤도수정을 뜻한다. 분배의 투쟁이란 대량생산을 전제로 성립되는 것. 저생산―저소비에 기초한 에코폴리틱스(생태정치)로의 지향이 장차의 급진과격 노릇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법정의 자리를 찾는 것은 자연의 조화와 섭리에 의탁한 스님의 평정심에 불경이 되는 걸까. 문장 어디에도 스님이 누구를 비난하거나 설교를 늘어놓은 흔적이 없건만 읽는 동안 내내 야단맞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감히 스님처럼 살겠다는 반성문을 쓸 수는 없다. 교술적 가르침이 아니라 시적 체현으로 빛나는 법정의 사계절. 나는 그것을 내가 속한 세속의 언어로 번역해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법정이란 존재는 21세기형 급진의 아바타(avatar·사이버 공간 상의 자아)로 떠오르기도 한다.
김갑수(시인·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