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과 1985년에 각기 출간된 ‘영화’ 2부작을 통해 질 들뢰즈는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와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 간의 흥미로운 유사성을 보여줬다. 영화와 철학을 잇는 이 독특한 다리는 영화학자들뿐 아니라 서양의 근대적 사유를 반성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참고거리를 제공했다.
들뢰즈의 ‘영화’ 2부작은 프랑스에서 출간되는 당일로 매진됐다고 전한다. 이미 구조주의 심리분석 모델이 한물 간 상태였던 프랑스 지성계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런 열화와 같은 인기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즉, 그런 이론들과 철저한 결별을 주장하는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예기하고 받아들일 만한 지적 토양이 무르익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영화’ 2부작이 일찍 번역됐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권 독자들이 이 저작에 대해 보여 준 차가운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미국 영화학계의 경우는 프랑스와 달리 아직도 상당 부분 구조주의적 시각과 심리분석 모델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물론 보드웰이나 캐롤이 영화학에서 거대이론의 적실성을 이미 문제삼기는 했지만,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마저도 과거의 보편주의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 불과하다.
명징한 언어와 정치한 논리분석을 중시하는 영미철학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들뢰즈의 사유와 분석철학이 화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실제로 영미권의 철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 중 들뢰즈를 주된 연구주제로 삼는 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나마 ‘영화’ 2부작이 영역된 이후 십여 년이 지난 1997년에 이르러 로도윅에 의해 ‘질 들뢰즈의 타임머신’이라는 연구저작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삼 년여가 흐른 뒤, 그레고리 플랙스만은 논문집의 형식을 통해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논문집은 들뢰즈 영화철학의 다양한 측면들을 천착한 논문들을 모아, 존재론 인식론 실천철학이라는 주제하에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까이에 뒤 시네마’에 실린 질 들뢰즈와의 대담을 실어 들뢰즈 영화철학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돕고 있다.
김연(하버드대 대학원·중국사상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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