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신중희씨(가명·38)는 요즘 시세판 쳐다보고 한숨쉬는 게 일이다.
그는 3일 이틀째 상한가를 치던 코스닥 인터넷업종의 A주식을 미련없이 팔아버렸다. 10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웬걸. A주식의 상한가 행진은 그후에도 이어졌다. 3일에는 7000원도 안 됐는데 15일 1만3700원으로 뛰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갈까’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러다간 상투잡지’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작년에 A종목에서 그는 5000만원 가량을 잃었다. 24만원에 잡은 게 5000원까지 곤두박질친 것이다.
나스닥 기업진입·퇴출 추이 | |||
연도 | 신규상장기업 수 | 상장폐지기업 수 | 상장기업총수(연말) |
96 | 992 | 558 | 5,556 |
97 | 648 | 717 | 5,487 |
98 | 487 | 906 | 5,068 |
99 | 634 | 873 | 4,829 |
2000 | 569 | 572 | 4,795 |
코스닥 기업진출·퇴출 추이 | |||
연도 | 신규등록 기업 수 | 등록취소기업 수 | 등록기업 총수(연말) |
96 | 31 | 39 | 331 |
97 | 83 | 55 | 359 |
98 | 8 | 36 | 331 |
99 | 104 | 38 | 457 |
2000 | 178 | 33 | 602 |
기관투자가라고 다를 바가 없다. SK투신운용의 장동헌 펀드매니저는 “솔직히 코스닥이 얼마간은 더 (올라)갈 것 같다”면서도 팔짱을 풀지 않는다. 잘만 들어가서 제때 빠져나온다면 쏠쏠한 재미를 보겠지만 경력 10년이 넘은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인 그에게도 그 ‘잘’이라는 게 너무 어렵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이유를 분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스트래티지스트(투자전략가)나 애널리스트(업종분석가)들도 ‘코스닥지수가 급등하는 배경이 뭔지, 왜 하필 그 종목이 오르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시기를 가늠하기 어렵고 분석이 힘든 이유는 코스닥시장의 주가변동을 종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코스닥증권시장의 조사에 따르면 코스닥시장의 변동성은 미국 다우지수의 3배, 홍콩 항셍지수의 2배, 미국 나스닥지수의 1.3배 등 18개 조사대상 증시 중 가장 높았다.
주가변덕이 심하다 보니 이를 엄폐물로 이용한 작전성 거래가 난무하는 게 코스닥의 현실이다. 증권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코스닥에서는 관련규정에는 걸려들지 않지만 누가 봐도 작전으로 보이는 거래들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러니 ‘제발 작전주를 한번 쥐어봤으면…’하고 바라는 투자자들이 많다.
현대증권 투자전략팀 오성진 과장은 “주가 변동성이 심하다는 것은 성장주 중심의 증시가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라면서 “코스닥이 세계 최고의 냄비증시가 된 데에는 작전성 거래를 뿌리뽑는 감리와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코스닥의 시장감시 및 감독의 수준은 아직 시스템조차 정비되지 않았다. 시장을 운영하는 증권업협회, 코스닥위원회, 코스닥증권시장 3자간에 기본적인 역할분담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그래픽 참조>
감시와 감독 소홀을 틈타 작전성 거래와 투기적 거래가 판을 치면서 옥석가리기는 점점 더 지연돼가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코스닥에는 95점짜리 기업부터 20점짜리까지 뒤섞여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종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없이 투자를 하다 보니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너무 높은 경우와 그 정반대의 경우가 혼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올해도 적자를 면키 어려운 일부 인터넷주들의 주가는 연초이후 두배 가까이 뛰는가 하면 회사내에 쌓인 현금성 자산이 시가총액(주식수×주가)보다 큰 데도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종목도 많다.
일부 투자자들은 “옥석가리기를 하고 싶어도 정보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맞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증권 대우증권 등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하는 코스닥종목 수는 전체의 20%가량에 그친다. 기업 공시가 겉치레에 그치는 것도 옥석가리기를 가로막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옥석가리기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개입이라는 데 증시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증시 분위기가 차분해지면서 실적 등의 기업내실 지표를 근거로 주가가 조정을 겪을 때쯤이면 여지없이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서 한마디씩 거드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최근에도 대통령과 장관까지 나서서 ‘아무튼 증시는 살려야 한다’, ‘코스닥시장은 분명히 저평가됐다’하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코스닥 투자자들은 주가가 무조건 오를 것이라고 믿고 가장 많이 오를 종목, 즉 값싼 종목을 거둬들였다는 분석이다.
동원경제연구소 강성모 투자분석팀장은 “코스닥 나스닥 등 성장주 중심의 시장은 투자자들의 심판으로 아홉 개 기업은 죽고 하나만 살아남는 게임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만성적으로 거품을 안고 가는 시장인데 정부가 주가가 떨어질 만하면 립서비스부터 실질적인 자금동원까지 온갖 부양책을 동원해 시장을 흐려놨다는 지적이다. 강팀장은 “정부는 진입퇴출 요건 등 기본적인 틀을 확실히 마련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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