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승모/무늬만 ‘토론’ 업무보고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40분


정부의 각 부처는 매년 초 대통령에 대한 업무 보고로 긴장한다. 지난해 업무 추진 실적과 새해 사업 계획에 대한 대통령의 1차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평가는 당연히 연초면 있게 되는 인사나 개각으로 이어진다. 장차관들이 긴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의 업무 보고가 그동안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평가의 장(場)’으로 기능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권위주의 정권이래 소리만 요란한 겉치레 행사로 흐르는 경향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대통령 업무 보고는 대통령이 각 부처의 보고를 들은 뒤, 몇 가지 미리 예정된 질문과 총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부처는 예정된 답변만 잘 준비해 가면 무사히 보고를 마칠 수 있었다.

15일 재정경제부에서부터 시작된 올해 업무 보고는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을 보고회에 참여시켰고, 대통령의 질문 내용도 사전에 관련 부처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에 부쳐 관심을 모았다.

이로 인해 재경부 업무 보고에선 민간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상시 개혁의 문제와 올해 미국 경제의 전망 등을 놓고 즉석 토론을 벌이는 등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청와대는 자평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질적인 토론이 이뤄지지는 못했다. 2시간 가량 진행된 보고와 토론에는 5명의 민간 전문가가 참석했으나 발언 기회를 얻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 그것도 대통령이 한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묻는 경우에 한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새로운 업무 보고 스타일이 소기의 성과를 얻으려면 좀더 보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발언을 못한 민간 전문가들로 하여금 상세한 업무보고 평을 써내게 하면 어떨까. 아마 그 부처의 장관은 더 긴장하고 겸손해지지 않을까. 물론 궁극적으로는 연두 업무 보고 체제에서 내실 있는 상시 보고 감독 체제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윤승모<정치부>ysm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