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에린 브로코비치

  • 입력 2001년 1월 16일 09시 55분


<에린 브로코비치> (Steven Soderbergh 감독, 2000년)

여성의 특성을 일러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라고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말했다. 이에 화답하여 여성법학자 로빈 웨스트는 ‘경제적 남성’과 ‘문학적 여성’을 대비시키는 이론을 전개했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여성의 윤리와 법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작품이다.

남성이 주도하는 법의 세계는 조직된 탐욕, 기계적인 업무 처리, 그리고 선민적 오만으로 점철된 비정의 세계이다. 그 차가운 법의 세계는 따뜻한 여성의 인간애 앞에 무력하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담고 있다.

한 여성의 집념이 제도를 바꾼다는 여성운동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노마 레이’(1979)와 ‘실크우드’(1983)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운동’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성적 매력을 은근한 여성의 자산으로 인정한다.

지방 도시 미인대회 퀸 출신 에린은 두 차례 이혼한 경력에다 아이 셋이 딸린 ‘대책 없는’ 여인이다. 그러나 결코 기가 죽지 않는다. 구직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보험이 없는 에린은 변호사 에드를 고용하나 법정에서 패소한다. 변호사의 방심 못지 않게 에린의 상스런 언행과 이혼한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거액의 치료비만 빚진 에린은 에드의 사무실에 나타나 떼를 쓴다. 그처럼 장담하던 사건을 졌으니 그 보상으로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며 출근한다. 연간 일정 시간 이상을 무료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변호사회의 규정에 따라 에드에게 사건이 배정된다. 에드는 단순한 부동산사건으로 생각하여 에린에게 던진다.

그러나 에린이 파고들자 엄청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초대형 에너지회사(PG&E)가 중금속 크롬으로 환경을 오염시켜 한 마을 주민이 병에 걸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는 크롬이 오히려 몸에 좋다고까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영화는 647명의 원고 전원의 전화번호와 사실관계를 줄줄이 암송하게 되는 에린의 ‘인간적인’ 준비과정을 조명한다. 인간의 송사는 단순한 서류와 기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주장인 것이다.

사건의 규모와 복잡성을 고려하여 에드는 전문변호사 팀을 영입하나 결정적인 승기는 에린이 마련한다. 배심재판을 고집하는 주민들을 에린이 설득하여 중재재판에 합의하고 판사는 사상 최대의 액수를 손해배상으로 명한다.

에린은 자신의 공로에 비해 보상이 적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분개한다. 그러나 “미인도 사과하는 법을 배우라”는 조크와 함께 에드는 에린에게 거액의 공로수당과 함께 동업자의 지위를 부여한다. 드디어 남자 법률가도 ‘배려’라는 여성의 미덕을 깨우친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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