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8월2일자 ‘동아일보’는 당시 ‘동우회(同友會)’라는 연극단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단성사(團成社) 앞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1926년 10월1일 아침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8년 만에 완공된 조선총독부건물의 낙성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종로 단성사에서는 수많은 조선인이 나운규(羅雲奎)의 ‘아리랑’을 보며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1924년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극영화 ‘장화홍련전’이 상영된 곳도 단성사였다. 한말(韓末)인 1907년에 세워진 단성사는 이렇듯 한국근대사의 현장이자 식민지 백성의 애환과 울분을 달래주고, 광복 후에는 전쟁과 가난으로 힘겹게 살아가던 이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안겨주던 문화의 마당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1902년에 세워졌던 ‘협률사(協律社)’라고 한다. 이는 애초 고종황제 등극 40주년을 경축할 행사장으로 만든 관립극장이었는데, 1908년 ‘친일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의 개인비서였던 신소설 ‘혈(血)의 누(淚)’의 작가 이인직(李人稙)이 운영을 맡으면서 원각사(圓覺社)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니 일반극장으로서는 단성사가 국내 최고(最古)인 셈이다.
▷그런 단성사가 9월이면 헐린다는 소식이다. 처음 세워진 지 94년 만이니 실로 한 세기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1913년 문을 열었던 국도극장은 1999년 10월 말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고, 1956년 개관했던 대한극장도 지난해 5월 철거됐다. 이제 단성사마저 그 뒤를 잇는다고 하니 올드팬들에게는 한 가닥 서글픔이 아닐 수 없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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