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 대기업이 ‘미국식 평가제도’를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 참여해 한국기업의 인사 및 평가 시스템을 들여다본 전문가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좋은 말은 있지만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기업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 인사를 뒷받침해 주는 평가와 관련된 축적된 노하우가 없다는 것.
신평가제는 기업 문화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입사 동기 급여가 두 배나 차이 나고 입사 7년차 직원들의 직급이 과장, 대리, 사원으로 격차가 날 정도.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신평가제를 운영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신평가제가 나오게 된 철학적 배경이나 운영 노하우에 대한 이해가 없이 ‘껍데기’만 직수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을 참여시키는 기업은 극소수다. 종업원의 참여나 이해가 없이 만들어진 평가 기준은 각 기업의 사정과 맞지 않고 평가제의 효과도 높지 않다.
또 어떤 근거에 의해 특정 등급을 받았고 앞으로 어떤 점을 보완하라는 지적과 직원의 의견을 묻는 등의 피드백(feed―back)과정도 부실하다. 고과만 통보해 줄 뿐이다. 일부 직원들은 ‘용감하게’ 이의신청도 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최고경영자들이 평가를 ‘회사의 일방적인 행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성신여대 박준성교수는 “모든 평가는 ‘쌍방향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요즘처럼 일방적으로 운영되면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고 말한다. “만약 미국에서 평가제도를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면 당장 직원들이 소송을 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평가제는 업무 성과를 높이고 우리의 고질병인 연고주의를 깰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신평가제의 장점이 잘 발휘되도록 경영자들의 인사와 평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병기<경제부>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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