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공기총 마구잡이 유통…전과자에 "친구이름으로 사라"

  • 입력 2001년 1월 17일 18시 50분


11일 서울 노원구의 한 총포상. 고객으로 위장한 기자가 “위력 있는 총을 사고 싶다”고 하자 종업원은 “화약총은 경찰서에 맡겨놓고 수렵할 때만 찾아야하기 때문에 번거롭다. 차라리 위력이 화약총 못지 않은 공기총을 사라”고 권했다.

종업원은 총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유효사거리(80여m) 안에서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구입 절차를 묻자 “주민등록등본과 신분증, 증명사진 2장만 내고 1주일만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정상인’이라면 구입에 아무 제약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취재진은 이번엔 ‘총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으로 위장해 보기로 했다. ‘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르면 △심신상실자 △향정신성의약품(마약 대마 등) 관리법위반 경력자 △알코올 중독자 등은 총을 살 수 없다. 또 전과자의 경우 전과 내용에 따라 관할 경찰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개인소지 가능한 공기총 관련사항
종류유효사거리위력가격
수렵용 5.0구경(국산)80∼100m노루 등 산짐승 사살 가능65만∼100만원
수렵용 5.0구경(외제)약 40m토끼 등 작은 짐승 사살 가능160만∼180만원
수렵용 4.5구경40∼80m꿩 등 조류 사살 가능50만∼80만원
사격 연습용 4.5구경 공기권총15∼30m작은 짐승 사살 가능180만∼200만원

12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다른 총포상. 기자는 “지난해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경력이 있는데 공기총을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총포상 주인은 “우울증하고 공기총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신체검사 받을 병원을 추천해 줬다.

그가 알려준 서울 중랑구 모 병원에서의 신체검사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한 간호사가 팔을 걷게 한 뒤 마약을 투입한 주사자국이 있는지 흘끗 보더니 마약 검사를 마쳤다. 또 정신병력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정상’으로 기록했다. 이유를 묻자 간호사는 “정신병이야 척 보면 아는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외과에서는 “다리를 움직여 보라”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는 단 두 마디로 검사를 마쳤다. 간단한 시력검사를 포함, 3분 만에 모든 검사가 끝났다. 검사하는 동안 의사는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000원의 검사비를 내니 ‘심신이 완전히 건강하다’는 내용의 검진 결과를 내 주었다.

같은 날 노원구의 또 다른 총포상에 들러 “강도 전과가 있는데 공기총을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강도 전과면 허가가 안 날 가능성도 있는데…”라며 잠시 고민하다 “그러지 말고 전과가 없는 친구 한 명만 데려와라. 신체검사 받는 것까지 10분이면 되니까 그 사람 이름으로 구입하고 사용은 손님이 하면 되지 않느냐”며 편법을 ‘지도’했다.

이런 취재 경험담을 경찰에 알려주자 경찰 관계자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우리야 서류만 관리하는 기관이고 신체검사야 병원 담당이니 책임은 전적으로 병원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미국의 총기관리 실태▼

매년 3만2000여명이 총기폭력으로 죽어가는 미국은 총기소지 규제여론이 들끓지만 근원적 해결에는 실패하고 있다. 건국초기부터 총기 소유가 법적으로 허용돼온 터여서 총기규제를 시민권의 침해로 받아들이는 일각의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총기 소지 자유화가 미국사회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데는 미국민 대다수가 수긍하는 분위기다. 학부모를 비롯한 대다수 시민들은 △새로 제작되는 모든 권총에 방아쇠 잠금 장치 의무화 △권총 구입자 등록 및 면허제 △싸구려 권총 제작판매 금지 △총기제작자를 상대로 한 각 자치정부의 소송 제기 허용 등을 법제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사회가 자유로운 총기소지 때문에 겪고 있는 사회불안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기총 유통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와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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