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정치인들이 대부분 안기부 자금인 줄 모르고 돈을 받았고 따라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소환할 수 없다는 검찰의 설명은 법리적으로 일단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검찰이 처음에는 왜 ‘장물(贓物)취득 혐의’까지 거론하며 정치인 소환설을 흘렸는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검찰 스스로 범죄 혐의가 없다고 인정한 180여명의 정치인 명단을 통째로 유출한 저의는 무엇인가.
검찰이 정치인 조사 포기 결정을 내린 시점에도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김종호(金宗鎬)자민련 총재권한대행과 김윤환(金潤煥)민국당 대표가 안기부 돈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직후 검찰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힘들다. 이른바 ‘안기부 리스트’에 여권 거물 인사들은 빠져 있었고 이는 검찰이 고의로 누락한 것이라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요컨대 정치인 수사를 진행할수록 ‘야당 흔들기’라는 검찰의 의도가 드러나는 데다 현재의 여권 인사들에게까지 파장이 미친다는 사실을 감안해 수사 방침을 바꿨다는 야당측의 지적도 있다는 것을 검찰은 알아야 한다.
야당측이 ‘20억원+α’ 등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관련된 이른바 3대 비자금 의혹을 거듭 제기하고 있는데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측에서도 DJ비자금 관련 자료를 갖고 있는 듯이 흘리는 것과 관련해 검찰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이 사건 수사를 적당히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당초 국기(國基) 문란 행위라고 규정한 검찰이 정치적 타협을 모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을 ‘김기섭(金己燮)―강삼재(姜三載)처벌’로 흐지부지 마무리해선 안된다. 안기부차장과 집권당 사무총장 수준에서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요리했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문제의 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강의원을 조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치인 조사 포기 결정을 내린 것도 잘못된 일이다.
검찰은 누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서 어떤 경로로 배분했으며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수사는 처음부터 여권과 검찰이 야당 압박용으로 기획한 ‘정략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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