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바로 세우자]증시에도 '저승사자' 있어야

  • 입력 2001년 1월 17일 19시 09분


“심판이 제 역할을 못하는데 누가 게임을 하러 오겠는가?”

시장 관계자들이 코스닥시장을 빗대 자주 주고 받는 말이다. 심판이 눈을 감고 있으니 작전과 사기가 난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게임 자체가 외면 당한다는 논리.

작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미국 증시의 감리시스템은 그래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감독 시스템 이정도는 돼야〓미국증권업협회(NASD), 증권거래위원회(SEC·우리의 금감원의 조사국에 해당), FBI, 연방검찰청 등 4개 조직은 ‘월가의 저승사자’로 통한다. 작전 ‘냄새’만 나도 NASD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이를 감지, 4개 조직이 유기적으로 조사에 들어가 철저하게 ‘검은 세력’을 추적해 내기 때문이다. 96년 딜러들의 호가담합이 문제가 된 뒤 1억 달러를 들여 만든 이 시스템은 재료와 주가와의 관계 등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어 거래량이나 행태에서 평시와 달라진 징후가 발견되면 곧바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특히 사이버 공간을 통한 증권사기와 증시를 이용한 자금세탁 등에는 FBI 특수팀이 동원된다. 우리도 감독기관은 있지만 공조가 문제다. 금감원과 검찰이 문제만 터지면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전산시스템과 통계자료를 확충하는 작업도 시급하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처벌도 너무 약하다. 한 번 적발되면 다시는 업계에 발을 붙일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증권가의 중론. 증권연구원 우영호 부원장은 “미국에서는 금융범죄자에게 30년형은 보통”이라며 “금융범죄는 사회의 인프라인 신용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중죄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잠깐 고생하면 평생 쓸 돈을 벌 수 있다면 오히려 인센티브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상품이 좋아야 투자자도 몰려온다〓증권업협회는 현재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과 등록요건 회복시 조기 재등록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중이다. 등록기업의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 투자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진입장벽을 더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도 함량미달 기업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옥석구별이 어렵고 제대로 된 투자가 힘들다는 지적이다.

계량화된 심사방식도 필요하다. 나스닥은 상장 요건이 까다롭지만 세밀하게 계량화된 기준만 충족하면 되고 퇴출 시스템도 짜임새 있게 운영된다. 기업들이 수익성에 치중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장 참여자의 각성도 중요〓‘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시장 참여자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투자자는 대박의 꿈을 좇아 허황된 재료에 현혹되기 보다는 기업가치를 잘 따져 투자하는 자세가 장기적으로 볼때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증권업협회 임종록 이사는 “코스닥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투자자와 기업가의 의식 전환”이라며 “돈놀이에 치중해 큰 돈을 번 기업가보다는 사업 수익성을 높이는데 힘을 쏟은 기업가를 존중하는 풍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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