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출장취소까지〓재경부는 올해 다보스 회의에 진장관이 4박5일간 일정으로 24일 출국한다고 21일 공식발표했다. 그는 회의기간에 3개 모임에 참석해 △한국 경제상황과 한반도 정치 경제 전망 △글로벌시대의 바람직한 경제정책 방향 △글로벌리제이션이 한국 및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연설 및 토론할 예정이었다.
이상기류가 나타난 것은 22일 오후. 진장관은 ‘복수의 채널’을 통해 해외출장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동안 고민한 뒤 이날밤 스위스 제네바주재 한국대표부를 통해 한국정부대표 교체의사를 전달토록 지시하곤 외부와의 연락을 끊었다. 진장관과 재경부측은 다보스회의 불참결정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정부신용도 훼손〓정부는 설연휴라고 하지만 경제가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에서 ‘경제팀 수장’이 국내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출장을 취소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돌연한 다보스회의 불참결정으로 잃은 것이 훨씬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정(內政)에만 골몰하다 국제적인 큰 흐름을 놓치게 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국제회의에 가겠다고 약속해놓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개막 직전에 취소통보를 한 것은 ‘결례’일 뿐만 아니라 자칫 한국경제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증폭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를 둘러싼 불안감을 가라앉힐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아쉬워한다.
주최측은 당초 이번 회의에 한국정부 인사 가운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진장관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김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키로 했던 이기호(李起浩)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 때문에 다보스행을 포기한 데 이어 진장관마저 불참함으로써 앞으로도 여진(餘震)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약속 불이행 때문에 한국이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지목될 우려마저 있다”면서 “진장관은 최소한 연설 및 토론자로 예정됐던 26, 27일의 회의에는 참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각과의 함수관계는〓정부가 무리하게 진장관의 출장을 취소한 것은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른 경제부총리 인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장관의 경제부총리 임명여부는 확실치 않은 상태다. 청와대는 이번 취소건이 경제부총리 임명사안과는 일단 무관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94년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때도 갑작스러운 개각 때문에 ‘국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대표로 참석키로 한 홍재형(洪在馨) 재무부장관이 부총리에 임명됨에 따라 서둘러 귀국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82년 IMF 총회 때도 당시 강경식(姜慶植) 재무부장관이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때문에 급거 귀국, 눈총을 받았었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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