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원들이 듣고온 설 민심

  • 입력 2001년 1월 25일 18시 37분


《설 연휴 동안 지역구에 내려가 귀향활동을 벌인 여야 의원들은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적대감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가는 곳마다 ‘제발 싸움질은 그만두고 경제부터 살려라’는 항의성 요구가 빗발쳤다고 의원들은 입을 모았다. 일부 의원들은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부터 살려라’〓의원들은 대부분 “지역의 체감경기가 국제통화기금(IMF)사태 때 못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며 “바닥 민심이 최악이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경북 안동)의원은 “재래시장에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더라”고 말했고, 주진우(朱鎭旴·경북 고령―성주)의원은 “상인들이 설 대목에도 1000원짜리밖에 구경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자민련 이재선(李在善·대전 서을)의원은 “제발 먹고살게 해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았다”며 “택시운전사로부터 ‘경제를 불안케 하는 정치인 ×들’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지역구를 돌아다니기가 민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경제난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높은 것은 인정했으나, 최근 들어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 기미를 보임에 따라 분위기가 다소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정(李在禎)의원은 “주식시장이 안정기조를 보이고 자금 경색이 풀리자 국민이 희망과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쟁은 이제 그만’〓민주당 원유철(元裕哲·경기 평택갑)의원은 “싸움질만 하는 정치권에 지긋지긋해 하는 유권자들의 싸늘한 민심을 접하면서 모골이 송연했다. 이러다 정치권 전체가 공멸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부산 북―강서을)의원은 “‘이러다 나라 결딴나는 거 아니냐’ ‘야당이라도 대화정치를 해서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김부겸(金富謙·경기 군포)의원은 “‘정치하는 놈들은 다 ×새끼’ ‘당신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라는 등 욕설에 가까운 험한 말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민주당 전갑길(全甲吉·광주 광산)의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컸다. 집권당이 너무 힘없이 끌려 다니지 말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전한 반면 한나라당 안경률(安炅律·부산 해운대―기장을)의원은 “YS(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와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잡으려는 술책이라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다”고 전했다.

‘의원 꿔주기’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경제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동정론도 만만치 않았다”고 정당화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완전히 정신나간 짓이라는 얘기가 많았다”고 상반된 여론을 전했다. 한편 여야를 막론하고 수도권과 충청권 출신 의원들이 전하는 ‘중간지대’의 민심은 하루 속히 정치 복원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남권 반(反)DJ정서 격화〓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경북 김천)의원은 “1주일 가량 지역구에 머무르는 동안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욕하는 소리만 들었다”며 “폭동이 일어나기 1시간전쯤 같은 상황”이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당의 이인기(李仁基·경북 칠곡)의원도 “‘대통령이 야당을 너무 깔아뭉개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다’는 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성원·김정훈기자>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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