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옛말은 더 이상 옳지 않다. 미국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가 2000년 7월 인간 게놈의 완전한 지도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한 길이 됐건 백만 길이 됐건간에 인간 본성을 규명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인간은 A(아데닌) C(시토신) G(구아닌) T(티민)이란 네 가지 ‘염기(base)’ 글자로 쓰여진 자서전의 초안을 알아냈다. 10억 단어로 이뤄진 ‘게놈(genome)’ 책 속에는 8만개 가량의 ‘유전자(gene)’ 이야기를 풀 열쇠가 들어 있는 것이다. 아직 10분의 1밖에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머지 이야기가 모두 해독된다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완벽한 자서전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23쌍 염색체 속에 담긴 ‘유전자’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다룬 역작이다. 그 중에서도 지능, 운명, 죽음, 기억, 이기주의 같은 인류 본성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유전자를 택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 유전자가 얼마나 정교한 설계도인가 깨닫고 탄복하게 된다. 만약 4번 염색체상의 돌연변이로 CAG라는 ‘단어’가 39번 이상 반복되면 중년에 퇴행현상이 일어나서 서서히 죽는다(헌팅턴병).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의 염색체 길이 중 약 2.5cm의 차이가 정상과 정신착란을 가른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알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는 데에 인간의 운명이 있다. 미래를 볼 수 있으나 바꿀 수 없는 눈 먼 예언자의 비극과 같다. 그렇지만 유전자의 변이가 모두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유전자 결정론이 곧 숙명론은 아님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장 ‘자유의지’에서는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당신 자신의 결정론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결정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결정권을) 소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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