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9.3배로 아시아 평균치인 17.3배보다 훨씬 낮았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눠 구한 값으로 이것이 낮다는 것은 주가가 순익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뜻. 그만큼 국가위험(컨트리 리스크)이 높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한국 주식이 저평가돼 있을까?
한길리서치가 작년 12월 국내외 펀드매니저 153명(국내 87명, 해외 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저평가의 이유를 알려준다. ‘한국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국내 77.0%, 해외 98.5%가 “아니오”라고 응답했다.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보니 수익을 꽤 내고 있는 기업에도 불안해서 쉬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의 조사에서 인도(16.0) 말레이시아(21.5) 인도네시아(34.8) 중국(41.1) 등이 우리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파키스탄(8.3) 스리랑카(5.4) 정도.
▽지배구조개선은 주가 상승 요인〓한길리서치 조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은 ‘한국 기업이 책임경영체제를 갖췄느냐’는 질문에도 국내 88.5%, 해외 95.5%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한국 기업이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을 한다고 보는가’라는 물음에도 국내 77.0%, 해외 93.9%가 부정적이었다.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펀드매니저들이 한국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72.4%, 해외 71.2%의 펀드매니저가 국내 기업 주가가 수익성에 비해 저평가됐다고 지적했다.
해외 펀드매니저들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추가투자를 하겠는가’라는 물음에 △매우 그렇다(78.8%) △약간 그렇다(21.2%)로 답해 100% 긍정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고려대 장하성교수는 “많은 국내 기업의 경영진은 주주들이 내리는 자기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 귀기울이지 않고 주가가 너무 싸다는 이야기만 한다”며 “주주가 의구심을 갖는 경우에는 즉각 풀어줘야 주가가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불투명성의 장벽〓소수주주운동을 이끄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몇 명은 최근까지 ‘기업지배구조 정보센터’(가칭)의 설립을 추진했다.
이들은 당초 △내부거래의 정도 △사외이사의 구성 등 공개된 자료와 면담을 통해 지배구조를 등급 매겨 국내외 투자자(주주)들에게 제공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이사회의사록을 열람할 수 없어 추진작업이 불가능해졌다. 이사회 의사록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상법의 관련조항 때문. 장벽에 부딪힌 이들은 결국 정보센터 설립을 포기하고 말았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펀드매니저 등 투자자들을 위해 개별 기업의 ‘주주중시 경영’ 평가정보를 유료로 제공해주는 전문기업이 영업중이다. 투자자들이 수많은 개별 기업의 속사정을 일일이 점검할 수 없는 점을 보완해주는 틈새산업인 셈이다.
장하성교수는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주주들이 이사회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게 관례”라며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하고 진짜 기밀의 공개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도록 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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