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1차부도를 내고 최종부도 위기의 초읽기에 들어갔던 작년 11월1일. 채권투자자 K씨(42)는 현대건설이 발행한 전환사채(CB·187회)를 액면가 기준 1억원어치 샀다. 그가 낸 돈은 그러나 2000만원도 채 안됐다. 이날 이 CB 가격이 액면(1만원)보다 훨씬 낮은 1100원∼3600원에서 요동쳐 평균 매입단가가 2000원을 밑돌았기 때문.
정부가 현대건설의 강력한 자구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부도처리후 법정관리도 불사한다’는 강경방침을 흘리자 CB가격이 곤두박질한 것. 이날 증권거래소에서 현대건설 주가도 1175원으로 주저앉았다.
K씨는 그러나 정부가 현대건설을 부도내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평소 소신에 따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현대건설 CB에 베팅을 하기로 했다. 그의 예상대로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현대건설의 서산농장 매각약속등을 받아들여 부도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해주기로 했으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도 산업은행이 80%를 인수해주고 있다.
부도위험이 없어지면서 현대건설 CB가격은 폭등, 지난 26일 5810원에 마감됐다. 불과 3개월도 안돼 최고 5.3배나 오른 셈이다. 26일 평균매수호가는 6010원이었으며 일부에서는 6700원에 사겠다는 주문도 나왔다. K씨는 이날 현대건설CB를 모두 팔아 5800만원을 챙겼다. 수익률은 무려 190%.
K씨의 ‘성공사례’는 정부가 부실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대한 투기를 유발하는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시장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는 해도 정부가 부실기업의 부도를 막아주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부실채권을 사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경험칙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98년 하반기부터 99년에 걸쳐 기관과 개인들이 대우채권을 싼 값이 샀다가 원리금을 보전받은 것도 비슷한 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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