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근태 6단은 흑 37, 39로 젖혀 잇고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이 39의 곳에 먼저 젖히면 11집짜리 선수 끝내기다. 이것을 흑이 기민하게 역끝내기를 한 것이다. 역끝내기는 일반적으로 2배로 계산한다. 그렇다면 고 6단은 흑 37, 39로 젖혀 이어 22집의 끝내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흑 37은 엄청나게 큰 수라는 얘기다.
서중휘 5단은 당연히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다가 허를 찔린 것.
따라서 백 36으로 잇는 대신 백 39, 흑 ‘가’, 백 37, 흑 ‘나’를 선수한 뒤 백 36으로 손을 돌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 많았다.
아마추어들은 끝내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바둑 이론이 고도로 발전하지 않았을 때 대부분의 승부가 포석이나 중반전의 단계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끝내기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포석 이론이 정교해진 현대 바둑에선 포석 등 초반에 승부가 갈리는 경우는 무척 드물고 대개 중반전을 거쳐 끝내기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끝내기의 새 지평을 연 기사는 이창호 9단이다. 이 9단은 신산(神算)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컴퓨터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끝내기로 세계를 정복했다. 이 9단이 등장하고 난 뒤 프로기사들도 끝내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이 9단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전인 92년,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던 조치훈 9단이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 결승전에서 이 9단과 만났다. 조 9단은 이 9단의 바둑에 대해 ‘일반적으로 포석→중반전→끝내기 순서대로 바둑이 느는 법인데 이 9단은 끝내기부터 공부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9단이 끝내기는 강할지 몰라도 포석이나 중반전 등에서는 자신보다 약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 9단은 당시 결승전에서 반집 두번, 한집반 한번 등 3연패를 당해 이 9단 끝내기의 매운 맛을 본 적이 있었다.
백 40은 17집에 해당하는 큰 끝내기. 하지만 이미 흑의 승리는 확정됐다. <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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