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물론 이같은 정치적 해석을 ‘난센스’라고 일축하고 있으나,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여부 수사와 리스트 유출 그리고 국고환수소송 등 일련의 사건은 사법적 의미로만 해석하기에는 정치적 파장이 너무 큰 게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말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유난히 ‘강한 정부·여당’을 강조하고 있어, 최근 일련의 ‘공세적 태도’ 역시 여권의 국정운영 기조 변화와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즉 ‘강한 정부·여당’은 결국 힘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현 단계에서 여권이 즉각적으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치권 사정’ 뿐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김대표가 30일 ‘안기부 돈’ 사건과 관련, “검찰이 수사를 마칠 때까지 (우리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며 “이건 정쟁이 아니다”고 말한 것은 계속 대야(對野)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렇게까지 욕을 먹고 멈출 수는 없다”며 솔직히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어차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로부터 ‘상생(相生)의 협조’를 구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4대 개혁을 마무리하고 경제회생의 안전판을 구축하는 올 상반기까지는 야당의 손발을 묶어놔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야당 의원들을 닥치는 대로 기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은 장기집권 음모와 정권재창출 계획에 장애가 되는 인물들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행동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의도”(장광근·張光根수석부대변인)라고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여권의 드라이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의구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즘 여권은 공공연히 ‘정권재창출’을 거론하고 있다. 김중권대표는 “정권재창출은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받을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장기집권이라는 이상한 논리와 궤변으로 접근하는 야당의 태도에 서글픔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의심하는 것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권사정이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큰 그림’의 한 부분이라면 사정작업은 이제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