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따라 시장참여자들은 당분간 리스크 관리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
1. 지표물과 비지표물
개별 채권의 유동성에 따라 채권시장에는 지표물(benchmark bond)과 비지표물(non-benchmark bond)의 구분이 있다. 지표물은 가장 거래가 활발하고, 사자와 팔자의 호가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환금성이 뛰어나다. 반면 비지표물은 지표물만큼 거래가 활발하지도 못하고, 사자와 팔자의 호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환금성이 낮다. 이 때문에 지표물은 유동성에 대한 댓가(Liquidity Premium)가 따라붙어, 비지표물보다 채권가격이 높다(금리가 낮다). 그래서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에 나타나는 금리차는 어느 정도까지는 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구분은 당발물과 경과물 사이의 구분과는 다른 개념이다.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당발물(가장 최근에 발행된 채권, on-the-run issue)이 지표물이 되고, 경과물(당발물이 발행되기 이전에 발행된 채권, off-the-run issue)이 비지표물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최근에 발행되었다고 해서 그 채권이 지표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3년만기 국고채 장외시장을 보면, 지난해 8월에 발행된 '국고채권 2000-12'가 오랫동안 지표물 역할을 했다. 11월에 '국고채권 2000-15'가 발행되기는 했지만, 이 채권은 발행되자마자 비지표물이 됐다. 2000-12호는 발행규모가 2조 4천억원에 달했지만, 2000-15호는 발행규모가 1조 850억원에 불과하여 거래에 필요한 충분한 물량공급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발행된 '국고채권2001-1'은 현재까지의 발행규모가 7,500억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물량공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지표물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한 채권이 지표채권이 되느냐 아니냐는 언제 발행되었느냐, 발행규모가
거래에 적합할 정도로 많으냐, 그리고 채권시장의 '큰손'들이 선호하느냐 등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미국 국채는 발행 회차마다 발행량의 편차가 그리 심하지 않고, 또 '큰손'이 뚜렷이 부각되지 못할만큼 많은 시장 참가자들이 있기 때문에,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구분은 언제 발행되었느냐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채권시장에서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구분도 우리와 비슷했다고 한다. 10년 만기 일본국채는 정례적으로 발행됨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 어떤 채권은 1년 10개월간 지표물 역할을 했는가 하면, 또다른 채권은 불과 2개월만에 지표물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의 80년대 국채시장을 설명한 다음의 인용문은 거의 대부분이 현재 우리나라 채권시장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There is no systematic method for determining which issue will become the benchmark. Since the benchmark is frequently traded by the four dominant securities firms(Nomura, Daiwa, Nikko and Yamaichi), a security must have the trading support of these four primary market-makers to become the benchmark. When the current benchmark begins to lose support(that is, its trading volume falls and the premium paid for its liquidity declines), the Big Four securities firms will begin to speculate(both in the rumor mill and in their trading activities) on which issue will be the next benchmark. Since there is a large liquidity premium for the benchmark, the transition between benchmarks can be costly. Many transitions take place over a period of months, and two candidates often end up "competing" with each other to become the benchmark. (중략)
Ultimately, a sort of implied consensus emerges and a new benchmark is anointed. Once a security is designated as the benchmark, it can remain the focus of the bond market for over a year until another satisfactory issue takes its place as the benchmark." (Christopher Argyrople and Thomas C. Rutledge, "The Japanese Government Bond Market," in Frank J. Fabozzi eds., The Japanese Bond Market,1990)
2. 미국 채권시장의 예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이가 비교적 안정적인 미국 채권시장에서도 98년 여름부터 약 2년간은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가 대폭 확대되는 경험을 했다. 이러한 미국시장의 경험은 최근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 나타나는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 확대에 몇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래 [그림1]을 보면 98년 상반기까지 10bp 이내에서 안정적이던 미국의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는 98년 8월부터 갑작스럽게 확대되어 40bp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0년에 들어서면서 축소와 확대를 반복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줄어들면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미국 국채시장의 지표물/비지표물 금리차에 대한 BIS의 설명을 보면(70th Annual Report, BIS, Jun. 2000), 국채시장에서 market-maker들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미국 정부의 재정흑자로 국채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면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진 자금들이 국채딜링(market-making)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또 98년 여름 LTCM의 위기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개별 채권들 사이에 안정적이던 금리차이가 갑자기 큰 폭으로 확대되면서, Yield Curve를 기초로 고평가된 채권을 팔고 저평가된 채권을 사들이던 Yield Curve Arbitrager들도 상당수 시장에서 이탈했다. 게다가 Y2K에 대한 우려도 대형기관들이 국채딜링을 꺼려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는 축소되었다. Y2K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고, 미국 정부가 국채 바이백(Buy-Back)에 나서면서 국채수요도 되살아났다. 채권시장의 안정은 개별 채권들 사이의 고평가/저평가에 기초한 Arbitrager들을 다시 돌아오게 했다.
주 :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구분은 30년 만기 국채 중에서 최근에 발행된 2개 채권과 그 이전에 발행된 2개 채권으로 함.
자료 : Bloomberg
미국의 경험을 정리하면,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 확대는 기존의 딜링세력들이 이탈하면서 발생한다. 딜링세력들이 이탈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Y2K와 LTCM 사건과 같은 위기감, 딜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 채권들 사이의 금리차 불안정 등.
발행한지 오래된 채권들은 장기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겠지만, 발행한지 일년 남짓한 채권은 딜링세력들이 여러가지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딜링세력들에게 주어지는 자금이 줄어들면 딜링세력들은 유동성이 낮은 비지표물을 먼저 처분하려 할 것이고, 이 때문에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가 확대되는 것이다.
3.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 확대
우리나라 국고채 시장에서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 확대는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전에는 금리가 하락하면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가 줄어들었다가, 이후 금리가 조정국면에 들어서면 금리차가 확대되는 양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2월 중순 이후에는 금리가 하락하는 과정에서도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림2]는 지난해 4월에 발행된 '국고채권2000-8'의 거래수익률(일평균)과 증권업협회에서 고시하는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 사이의 차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기간동안 지표물은 2000-10호나 2000-12호, 2001-1호였고, 2000-8호는 비지표물이었다. 그러나 12월 중순까지는 금리차가 10bp이내에서 안정적이었으며, 또 금리하락시에는 금리차가 줄어들고, 금리가 오르거나 더이상 하락하지 못하는 조정기에는 금리차가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12월 중순 이후이다. 지표금리와의 괴리가 10bp를 넘어섰고, 또 지표금리가 하락하는데도 금리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1월 중순부터는 금리차가 30bp 이상으로 더 확대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00-10호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 : 거래가 없거나 거래금리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경우는 제외함.
자료 : 한국채권연구원, 증권업협회
4. 지표물과 비지표물 금리차 확대의 원인
우리는 우리나라 국고채 시장의 지표물과 비지표물 금리차 확대도 BIS의 설명대로 딜링세력(market-maker)들이 국고채 시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또 딜링세력들이 국고채 시장에서 이탈한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예보채로 힘의 분산 : 예보채 발행이 딜링세력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딜링자금의 부족을 낳았다. 앞의 그림에서 보듯이 국고채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금리차 확대가 예보채가 발행되던 12월 중순부터라는 점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예보채가 발행되기 전에는 금리하락의 수혜는 국고채 보유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금리하락 랠리가 시작되면 지표물이든 비지표물이든 무조건 국고채를 사들여야 한다는데 시장 참가자들이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보채가 발행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비지표물 국고채보다는 예보채 당발물이 딜링세력들에게 더 선호되었고, 이 과정에서 비지표물 국고채는 서서히 "왕따"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채로 힘의 분산 : 우리는 1월 중순부터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가 더 확대되는 과정에는 회사채로의 힘의 분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우량회사채들이 시가평가표보다 50-60bp까지 낮은 금리로 거래되면서 국채 위주의 Flight to Quality 논리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금리가 하락하면 국채 금리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우량회사채 금리도 같이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가 채권시장에 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장금리가 더 하락하는 경우에도 절대금리가 높은 우량회사채가 국고채보다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자연히 국고채 딜링자금을 일부 회수하여 우량회사채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조정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금리상승에 대한 두려움 : 우리는 금리가 바닥권에 가까웠다는 불안감의 확산도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추론한다. 은행 수신금리의 하락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국고채의 최대 수요처인 은행의 역마진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주가가 바닥을 다지고 상승하고, 콜금리 인하라는 재료를 너무 일찍 소진해버렸다는 우려가 국고채 딜링자금의 축소를 낳았을 것으로 추론한다. 금리가 상승할 때 그나마 발빠른 손절매라도 가능한 지표물은 남겨두고 손절매조차 힘든 비지표물은 먼저 처분하는 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2000-12호의 "왕따" : 우리는 지표물이 2000-12호에서 2001-1호로 옮겨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도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 확대의 한 원인이었다고 판단한다. 2000-12호는 지난해 하반기내내 지표물 역할을 해왔고, 발행물량도 2조 4천억원에 이른다. 이에 반해 2001-1호는 발행물량이 7천 5백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다수의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2001-1호도 2000-15호처럼 발행되자마자 비지표물이 되고, 2000-12호가 계속 지표물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16일 이후 2001-1호의 거래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때부터 지표물은 2000-12호에서 2001-1호로 바뀌었다. 지표물이 순식간에 교체되자 2000-12호가 계속 지표물로 남아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딜링세력들이 급하게 2000-12호를 처분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가 급격히 확대되었다는 추론이다.
5. 리스크 관리 방향
우리는 현재의 국고채 금리수준이 바닥권에 가까운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향후 금리상승이 U자형이 될 수도 있지만 L자형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지표물과 비지표물의 금리차 확대가 국고채금리의 상승 전조라고만 해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딜링세력들의 대거 이탈은 분명하다. 따라서 국고채와 예보채, 통안채에 대해서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지표물과 비지표물 사이의 교체가 불분명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시장상황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지표물과 비지표물에 대한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고채 비지표물은 지표물과의 금리차가 이미 상당폭 확대된 상황이므로, 성급한 처분보다는 당분간 시장상황을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가급적 딜링 포지션을 줄이고 절대금리가 높은 우량회사채 편입을 늘릴 것을 권하고, 불규칙한 발행으로 지표물과 비지표물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한 예보채에 대한 투자는 국고채보다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