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은 2차례나 발표시기를 늦춰가며 지난해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춰 워디안을 선보였습니다. 나온지 100일이 다 되가는데 한컴의 홈페이지 신문고에는 한글 워디안에 대한 불만의 글이 하루에도 몇 십 건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워디안을 구입한 사람이 얼마되지도 않지만 사용해본 사람은 다 한마디씩 하는 것같습니다. 질책하는 사람, 무턱대고 욕만 적어 놓은 네티즌 등 표현 방법은 다양했지만 결론은 한컴이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디안의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한글워디안은 태어나서는 안될 아래아한글 시리즈의 사생아인가요? 아니면 커면서 자연스럽게 고쳐질 수 있는 흉터들 문제인가요?
한글워디안은 유니코드를 채택해 다국어를 지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동안 고집해왔던 ‘Hnc 라이브러리’를 버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라이브러리’를 채택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들과 호환이 잘 되도록 배려한 것이지만 하나의 모험이기도 했습니다.그래서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사용자들은 출시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환영보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새로운 기능들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한글97’과의 호환 문제였습니다.‘한글’이란 이름을 걸고 나온 제품이지만 ‘워드프로세서’라고는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기능을 쓰다가 컴퓨터가 다운되는 현상이나 한영 자동변환 기능이 없어진 것, 화면이 꺼지는 현상 등등.
'고객이 왕'인 시대라 대놓고 반박하지는 못하지만 한컴은 한컴대로 속으로 꿍꿍앓는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 회사 최승돈 기술담당이사는 한글 워디안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인정하면서도 좀 더 큰 시야를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워디안은 이전 아래아 한글과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워드 프로세서입니다. 말하자면 버전 1.0인 셈이죠.어느 프로그램이든 처음 만들어지고 나면 많은 버그가 발견되고 점차 개선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워디안도 마찬가집니다”
급속도로 변하는 컴퓨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컴퓨터 환경에 적합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오류들이 발생했다는 말입니다. 과정상의 오류는 분명이 있지만 개발방향 자체는 옳았다는 생각이 뚜렷한 것같습니다.
수긍이 가는 부분입니다. 뛰어난 컴퓨터라고 항상 칭찬 받아왔던 애플사의 ‘매킨토시(Macintosh)’가 왜 고전을 하는 걸까요. 결국은 호환성 문제입니다.
인터넷이 전세계로 보급되면서 프로그램들끼리 호환성은 이제 필수가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윈도우’를 기반으로 한 ‘큰 물’을 타야만 무한 경쟁에서 살아 남는 세상입니다.
한컴이 기존 사용자들을 담보로 하고도 미완성의 ‘한글 워디안’을 내놓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왕노릇 했지만 큰 물에서 인정 받지 못하면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 그리고 IMF이후의 소프트웨어 시장 불황과 외국 업체들의 진출. 이 모든 것이 한컴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게다가 국민들의 엄청난 기대는 한컴이 뭔가 해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왔을 게 확실합니다.
사용자들이 아직도 아래아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애국심과 관용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직은 손에 익어서 혹은 그래도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편리한 점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컴이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방향을 잡은' 워디안을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제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사용자들의 관성이 없어지기 전에, 그나마 남아있는 토종기업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식어버리기 전에.
양희웅<동아닷컴 기자>heewo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