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는 미국의 영향력이 큰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서도 산업은행의 현대전자 회사채 인수의 부당성을 주장한다.죌릭 대표 지명자는 한국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철강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철강산업이 일부 (외국의) 불공정거래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대응책 마련을 시사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진 직후 대조적인 일이 있었다. 미국 AIG컨소시엄이 현대투신 인수를 공식 제안하면서 투자의 전제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공동출자를 요구한 것이다.
이 요구를 쉽게 풀이하면 현대투신의 일부 부실을 털어 내기 위해 정부가 사실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라는 뜻이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서도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사기업인 현대투신에 대한 정부 지원은 더더욱 ‘원칙’에 안 맞는다. 그러나 정부가 AIG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대투신을 ‘지원’할 경우 미 정부가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의 ‘두 얼굴’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정부 당국자는 “현대전자 및 철강문제의 경우 한국정부의 지원은 미국 경쟁업체의 이익에 반하지만 현대투신 지원은 오히려 미국업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경제에 국경이 없는 글로벌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국 기업의 이익이다. 이를 위해서는 때로 모순되는 정책도 서슴지 않는다.
해외 근무 경험이 많은 한 외교관은 “미국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재외공관의 핵심업무는 현지에 진출한 자국기업의 이해(利害)를 본국 정부에 보고해 정책으로 연결토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에 국익 개념이 없어졌다는 주장은 아직까지는 ‘현실’이 아니다.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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